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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의 현장, 혁명광장

ⓡanee(라니) 2010. 9. 5. 16:56

 

2010년 8월 2일 (월)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의 현장

 

 

 

 

시나이아를 떠난지 2시간 쯤 후에 부쿠레슈티로 돌아왔다.

아침나절 버스 안에서 잠깐 본 부쿠레슈티의 모습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다지 큰 기대감이 생기진 않는다.

차우셰스쿠만 아니었더라면 부쿠레슈티도 꽤나 매력적인 도시였을텐데하는 하나마나한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가 서서히 속도

를 늦추며 멈출 태세다.    

 

 

혁명광장

높이 솟은 하얀탑과 노란 건물이 보이는 이 곳에서 버스가 멈추어 섰다.   언뜻 보기에도 넓은 공간이 있는 걸 보니 무슨 광장

이겠거니 했는데 1989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2월 혁명이 일어났던 혁명광장이란다. 

1939년,  화재와 혹시 있을지 모르는 폭동에서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왕궁 앞 광장'으불리

다가 공산정권 시절에는 '공화국 광장' 또는 '공산당 본부 앞 광장'이라고 불렸으며, 1989년 혁명 이후 '혁명광장'이라 고 불리

고 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1918.1.26~1989.12.25]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는 1965년부터 20년 이상 공포정치로 루마니아를 통치한 독재자이다. 1918년 1월 26일 스코르니체슈티(Scornicesti)에서 태어난 차우셰스쿠는  15세에 공산당에 가입했고 루마니아가 공산화 되자 정부에 진출해 1967년 국가원수가 되었으며, 1974년 대통령직이 신설되자 초대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권력을 잡은 차우셰스쿠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고 언론을 억압했으며, 비밀경찰을 조직해 반대세력을 숙청하고 국민들을 감시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해 부인 엘레나를 비롯한 친인척들을 정부요직에 앉혔으며 1971년 북한을 방문한 뒤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영향을 받아 김일성처럼 자신을 숭배하게 했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차우셰스쿠가 편 무리한 중공업 중심 정책은 루마니아의 실정을 무시했던 탓에 막대한 대외부채만을 남긴 채 실패했고, 차우셰스쿠는 이 막대한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루마니아 내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농산물의 대부분을 수출하고 국내의 석유·식품·공산물 소비를 억제시켜 국민들을 에너지와 식량 부족으로 신음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우셰스쿠 자신은 사치를 일삼았으며, 부쿠레슈티에 자신을 위한 거대하고도 사치스럼 궁전을 건축했다. 기아와 독재에 시달리던 루마니아 국민들은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차우셰스쿠는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Timişoara)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차우셰스쿠는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했고, 이로 인해 1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오면서 시민들은 물론 군부까지도 차우셰스쿠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반정부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고, 시위대는 수도까지 함락시켰다. 차우셰스쿠는 헬리콥터로 탈출을 시도하다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결국 1989년 12월 25일 공개 총살형에 처해졌다.  

 

 

 

 

 

 

  혁명 광장의 구공산당 본부 

 

정 가운데 국기가 달려 있는 그 위의 발코니가 차우셰스쿠가 연설하던 발코니로 차우셰스쿠는 이 곳에서 연설을 하던 중 성난 군중들을 피해 황급히 헬리콥터로 비상 탈출을 하다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결국 1989년 12월 25일 공개 총살형에 처해졌다.  

 

 

 

 

 죽은 자를 위한 위령탑

광장에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25m 높이의 삼각형 조형물이 높이 솟아 있는데, 1989년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혁명 기념비다.
 

독재자 차우셰스쿠에 대항해 총탄을 맞은 동지들이 얽혀 있는 형상을 표현한 위령탑의 조형물

  

  

 

국립 미술관 (옛 왕궁)

위령탑 앞에서 구 공산당 본부를 등지고 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보이는 건물은 현재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인 국립 미술관으로 옛 왕궁이었던 곳이다. 한때 왕궁으로 쓰였던 만큼 외관이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1989년 혁명 때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이후 보수하는 데만 꼬박 7년이 걸렸으며, 일부 전시실은 2002년에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왕궁 부속 성당이었던 크레출레스쿠 정교회

국립 미술관의 왼쪽으로 보이는 정교회는 왕궁 부속 성당이었던 크레출레스쿠 정교회다. 대법관이었던 이오르다케 크레출레스쿠(Iordache Kretzulescu)와 그의 아내 사프타(Safta)가 세웠고 루마니아의 유명한 화가 게로게 타타레스쿠(Gheroghe Tattarescu)가 내부 벽화를 그렸단다.

 

 

 

 국립 중앙 도서관(왼쪽)과 비밀 경찰 청사(오른쪽)

 

 

 

비밀경찰청사

성난 군중에 의해 허물어진 부분만 유리로 재건축하여 독특한 건물의 형태를 갖게된 비밀

경찰청사는 크레출레스쿠 정교회와 대각선으로 마주하고 있는데 둘 사이에 비밀지하통로

를 만들어 왕궁과 통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국립 중앙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