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에윱 술탄 자미 & 피에르 로티의 찻집- 

 

 

 

 

 

 

지하 궁전 관람을 서둘러 마친 우리는 그랜드 바자르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숙소에 놓아두고 다음 행선지로 정한 로티 언덕으로 가기 위해 에미노뉴의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가 시설은 형편없지만 위치만큼은 정말 끝내주는 듯.......

 

 

 

 

같은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버스를 한대 보내고 다음 버스에 올라탄 우리들.

제톤을 구입하지 못해 버스에 올라 차장에게 각각1.4리라씩을 지불했다.

'차비를 내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차장의 시선 좀 보라구.ㅎㅎ'

우리가 탄 버스는 99번 버스였던가???

6개월 전의 일이고 보니 정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 이제 출발이다. 

 

 

 

  

 

어느 정도 달리다 보니 오른쪽으로 골든혼이 보인다.

'버스의 오른쪽 자리에 앉았으면 좋았을걸.'

미처 생각지 못하기도 했지만 생각했다 해도 아마 자리가 없었을 거다.

필시 오른쪽부터 자리가 찼을테니...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이색적인 이름 모를 거리의 모습

   

 

 

 

 

이름 모를 거리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 하는 사이 에윱 술탄피에르 로티라 쓰인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온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찾는 우리들  

 

 

 

 

 

에윱 술탄 자미 

에윱은 모하메드를 따라 성전의 기수로 활약했던 인물로 7세기 후반의 콘스탄티노플 공략 때 전사를 하였는데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에 우연히 그의 묘가 발견되어 그 자리에 지은 자미가 에윱 슐탄 자미이다. 이후 이 자미는 메카와 메디나의 다음가는 성지로 여겨지며 술탄이 즉위할 때 이 곳에서 칼을 수여 받았다고.    

 

 

 

 에윱 술탄 자미를 바라보다 눈에 띄는 커플 발견,

순간 무슨 용기가 났는지 커플의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 준다.  

그들은 무슨 일로 저런 차림을 한 것일까. 

 

 

 

 

 

 

에윱 술탄 자미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피에르 로티 언덕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들.

자미 안에도 묘지들이 많았지만 맞은편 쪽으론 더 많은 묘지들이 보인다.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묘지들.

밤에 홀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좀 무서울 것 같다.

 

 

공동 묘지가 끝나는 곳부터 바로 이어지는 주택가.  

 으~~~

 

 

로티 언덕은 걸어서 10분내지 15분 정도가 걸린다는데 우리는 좀 더 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케이블카 타고 로티 언덕으로 여유롭게 즐겁게 고고씽~ 

 

 

 

발 아래로 보이는 수많은 비석들...

좀 더 타고 싶은데 케이블카는 순식간에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 주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예상했던대로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다.

 

 

 

에윱 술탄 자미도 보이고...

 

 

 케이블카에에서 내려 바라본 풍경 

케이블카 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좋아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지만 차 한잔 마시며 이 풍경을 바라본다면 금상첨화일 거란

생각에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인 피에르 로티 찻집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골든혼 해협을 조망할 수 있는 피에르 로티의 카페 옥외 테라스 

피에르 로티라 불리우는 이 지역은 프랑스의 소설가인 피에르 로티가 이스탄불에 머물 때 즐겨 찾았던 곳으로 그의 이름이

마치 지명처럼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언덕의 목조로 된 아담한 찻집 또한 피에르 로티가 즐겨 찾던 곳이라고. 

피에르 로티는 자신의 연애 경험을 살려 센티멘털한 문체로 많은 연애소설을 썼고 해군 장교였던 그는 가는 곳마다 여자들

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멋진 전망을 감상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이들

 

 

 

 

차이 한잔과 아이스크림 한 입에 마냥 행복한 우리들

 

 

 

 

 

피에르 로티 찻집에 앉아 처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는 다음 코스로 어디를 가면 좋을까였는데 전망에 취해 앉아 있

다보니 어느새 밤이 되고 말았다.  

다시 전망대로 내려온 우리들.......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제대로 된 야경 사진을 찍을 수 없음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밝을 때 보는 전망도 좋았지만 야경 또한 황홀하기 그지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케이블카에 몸을 싣는다.

 

 

 

 

여럿이서 함께라 괜찮았지만 양옆으로 묘지가 즐비한 이 길은 혼자 걷기엔 으스스할 것만 같다.

  

 

에윱 술탄 자미 앞 광장

어찌된 일인지 밤이 되니 사람이 더 많아진 듯... 

 

 

 

 

더위를 피해 밤에 더 많이 활동을 하는 것인지 아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경찰도 보인다.

 

 

 

 에윱 술탄 자미 근처의 상점들

 

 

 

 

 맘 같아서는 이대로 밤을 지새우고 싶지만 그럴수는 없는 일...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고... 

 

 

에미노뉴에서 내렸다.

 

 

밤이 깊어가고 있지만 에미노뉴는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밤...

새콤 달콤한 홍합밥으로 이스탄불에서의 기억을, 추억을

하나 더 보태본다.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쉐흐자데 자미 & 수도교 & 지하궁전-

 

 

 

 

 

   

수도교가 보고 싶은 나는 일행들과 헤어져 지도를 보며 쉐흐자데바쉬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지도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은 뒷길로 들어선 탓에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시간은 야속하게 쉼 없이 흘러 가고 혹시나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까 걱

정이 몰려 온다.

'에이! 그냥 돌아가 버릴까.'

'아니야, 여기 까지 왔는데 그럴 순 없잖아.' 

되돌아가야할 인지 조금만 더 찾아보아야할 것인지 갈등에 휩싸이는 나....  이 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쉐흐자데 자미였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우와! 방가방가. 쉐흐자데자미가 여기 있으니까 수도교도 멀지 않은 곳에 있을거야.

  

 

 

 

  쉐흐자데 자미

쉐흐자데바쉬 거리에 있는 쉐흐자데 자미는 카누니 술탄 슐레이만이 천연두로 죽은 왕자 메흐멧을 위해 건축한 자미라는데 이 자미 또한 미마르 시난의 작품이며 오스만 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의 시초가 되는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가우디가 있다면 이스탄불 도처엔 미마르 시난이 있는 것 같다. 

 

 

 

이스탄불의 모든 미나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나레라는 쉐흐자데 자미의 미나레 

하지만 난 전문가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쉐흐자데 자미 주변의 작은 공원

쉐흐자데바쉬 거리에 있는 이스탄불 시립홀

 

 

 

 

  발렌스 수도교

드디어 나의 목적지인 발렌스 수도교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도시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비잔틴 시대의 유적지인 발렌스 수도교는 이스탄불의 명소 중 하나지만 단체 여행으로 이스탄불을 찾는다면 소외되는 유적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누스1세 때 착공하여 발렌스 황제가 통치하던 378년에 완공되었는데 1000m 길이중 현재 800m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쉐흐자데 자미를 건설할 때 130m정도 훼손되고 금세기에 들어 도시 계획으로 조금더 파괴되었다고 함) 

이스탄불에 수도교가 필요했던 이유는 7개의 언덕이 있어 경사가 심했던 이스탄불의 지형 때문으로 언덕과 언덕 사이를 2층짜리 아치형 수도교로 이어 이 곳으로 물을 흘려 보냈다고 한다. 수도교로 운반한 물은 이스탄불 대학에 있는 저수지로 모여 들었고 비잔틴 궁전에서 사용된 물은 '예레바탄 사룬치(흔히 지하궁전이라 부르는 곳)'로 불리던 지하 저수지로 들어갔다고 한다. 

오스만 터키 시대에는 실제로 이 수도교가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그 오랜 시간을 견디고 현재까지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며 오스만 터키 역대 술탄 중에 광적인 인물이 있었다면 발렌스 수도교나 아야 소피아 성당 같은 비잔틴 시대의 유물은 하나도 남김 없이 파괴되어 이야기로나 접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런 술탄이 없었다는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싶다.    

 

 

 

 

 유니베르시테역 

발렌스 수도교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기도 하고 여기까지 온 김에 파티자미까지 걸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약속시간인 4시가 가까와져 가고 있어 악사라이 지구를 조금 구경한 뒤 트램을 타고 술탄 아흐멧 지구로 향한다.

 

  

 

 

어느새 너무나도 눈에 익숙해진 술탄 아흐멧 지구에서 내려 지하궁전을 찾는다.

 

 

 

 

지하궁전 관람을 위해 티켓을 구입하려고 줄을 선 사람들

빨간 기와 지붕의 이 건물이 지하궁전의 입구이다. 이 곳에서 티켓을 끊어 계단 밑으로 내려가면 지하궁전 이란 저수지가

있는데 이 런 작은 건물 밑 지하에 그런 공간이 있으리라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지하궁전 티켓

 

 

  지하를 떠받치는 기둥들

지하궁전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만들어져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1세 시대에 확장돼 길이 141m에 폭이 73m나

는 대규모의 물저장고이다.   8m 높이의 돌기둥 336개가 떠받치고 있는데 관람객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돌기둥 사이에

복도를 치하고 조명까지 설치해 놓았다.

이 저장고에 저장되는 물은 이스탄불에서 19km 떨어진 벨라그드 숲에서 끌어온 물로 저수량이 80000t에 달한다고.

원래는 '예레바탄 사룬치(지하 저수장)'라 불려야 하지만 마치 지하궁전 같기 때문에 '예레바탄 사룬치'라는 말대신 '예레바

탄 사라이(지하궁전)'로 흔히 불리운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물 저장고 답게 기둥 아래 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는데 감도는 기운이 왠지 신비스러운

느낌이다.

  

  

 

  

 뒤집힌 메두사 머리

예레바탄 사라이 내부에는 돌기둥의 초석으로 사용되고 있는 거대한 메두사 얼굴이 2개 있다.

하나는 거꾸로 놓여 있고 하나는 옆으로 누워 있는.... 

메두사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뱀이 된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 때문에 메두사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게 이리 놓았다는

설도 있고 언뜻 듣기론 기둥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이리 놓았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곳의 돌기둥들이 재활용품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옆으로 누운 메두사 머리

 

또 다른 의견으로는 이교도를 멸시한 풍토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다.

메두사는  기독교  이전의  그리스인이 어딘가에 세운 조각상이었을 것이고 비잔틴 시대

되면서 메두사는 이교도의 유물이 되었을 것이기에 이교도의 신상을 초석으로 사용하

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렇게 메두사 얼굴을 뒤집어 놓거옆으로 놓음으

로써 멸시감을 나타낸 것일 거라는 것.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물이끼로 색도 변하고 오랜 세월을 이러고 있었을 생각에

물이 아님에도 왠지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기둥에 다양한 문양이 있는 것은 각지의 오래된 신전 등에서 운반해 왔기 때문이며...  

 

 

이것 또한 재활용한 기둥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행운의 기둥(?)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가까이 가보니 아야 소피아 성당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장면

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둥에 손바닥을 대고 엄지 손가락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리면 소원

이 이루어진다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재미로라도 하고 싶은게 공통적인 마음들인지 관광객

들에게 인기가 좋다. 

 

 

 

 

 

 저수지의 물고기와 동전들

저장고의 바닥엔 지금도 물이 차있고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관광객들이 던져 넣은 세계각국의 동전들로 반짝인다.

 

 

 

 

 

지하궁전 내에는 카페가 있어 차를 즐길 수도 있고 때론 이 곳에서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고 한단다. 지하

물 저장고라는 장소로만 생각해 보면 썩 잘 어울린단 생각은 들지 않지만 지하궁전이라 불릴 정도의 전체적

인 분위기를 생각해 본다면 이 곳에서 마시는 차 한잔이나 이 곳에서 듣는 음악 감상도 꽤 괜찮을 것이란 생

각이 들기도 한다. 

  

 

 

☞ 다음편에선 피에르 로티의 찻집으로 안내할게요.

 

 

추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그랜드 바자르(카팔르 차르쉬)-

 

 

 

 

 

그랜드 바자르 [Grand Bazaar, Covered Bazaar]

오늘이 터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줄 약간의 선물을 사기 위해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터키 이름으로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의 '카팔르 차르쉬'라 불린단다.   30,700㎡의 면

에 약 5000여 개 이상의 점포가 가득 들어서 있고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쇼핑을 원하는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이스탄불의 명소인 그랜드 바자르는 메메트2세가 콘스탄

노플 정복 후에 건축을 명해 1461년에 완성된, 오래된 역사를 가진 바자르이다.차이 찻잔과 이즈닉 타

일 등 거의 모든 제품을 다 갖추고 있어 쇼핑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시간  가는 줄 모를 구경거리를 제공해

준다.   

 

 

술탄 아흐멧 쪽의 누르오스마니에 문

그랜드 바자르엔 여래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누르오스마니에 문이다. 동영상이나 여러 블로거들의 사진 속에

서 본 적이 있기에 나는 이 문을 찾아 꼭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이동 경로상 우리는이 문이 아닌 베야짓 문을 이용하게 되

었고 동행인들과 헤어진 후엔 미로 같은 바자르 속에서 이미 방향 감각을 상실한 데다가 수도교까지 가보려면 시간까지 촉

박해 나는 이 문을 나의 카메라에 담는 걸 포기해야 했다.     

 

 

   

 터키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아이템인 듯한 이블 아이

  

 

 

 

 

 값을 흥정 중인 관광객들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쇼핑 장소라지만  나는 나의 성격 탓에 바자르를 돌기 시작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피곤함을 느끼며 물건 구경에도 흥미를 잃어 버렸다.상인들의 호객 행위 때문에 마음놓고 물건을 구경할

수도 없는데다 물건에 가격이 쓰여있지 않으니 매번 가격을 물어봐야 하는 과정과 가격 흥정을 해야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피곤했던 것. 자칫하면 바가지를 쓰겠구나 싶으니까 물건 구

매 의욕이 사라지며 구경하는 것도 귀찮아져  사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물건만 구입하곤 미련없이 바자

르를 빠져 나왔다.         

 

 

 

 

 

'남녀노소 불문... 수다는 즐거워' 

 

'비켜요 비켜. 배달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상인들이 다 남자였었던 것 같아.

  

도자기 공방에서 본 그릇들과 비슷한 그릇들

'수공품은 아니겠지?' 

  

'밸리댄스 출 때 입는 옷인 거야?'

  

'터키하면 카페트도 빼놓을 수 없지.'

 

 

 

딸 아이와 일행들은 물건 구경을 더 하겠다고 하고 난 바자르 구경에 이미 흥미를 잃은 상태라 일행들과

헤어져 바자르를 나와 수도교로 향한다. 1시간 반 후에 지하궁전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이스탄불 대학과 베야짓 자미-

 

 

 

 

 이스탄불 대학 정문

슐레마니에 사원을 나와 점심을 먹고 이스탄불 대학을 찾아보기로 했다. 담장에 둘러싸인 대학 건물 같은 것이 보이길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인 듯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스탄불 대학이 맞단다. 대학의 정문은 아니지만 그 곳도 이스탄불 대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길래 그 곳으로 들어갔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여권을 보여주고 들어갔던 것 같다. (위의 사진은 대학을 둘러보고 나올때 찍은 사진임)  

 

 

 

                  대학치고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다 싶었는데 대학 건물이 다른 곳에도 흩어져 있는 걸로 봐서 단과대학인 모양이다.  

 

 

 

슐레마니에 사원을 배경으로

슐레마니에 사원에선 오히려 슐레마니에 사원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여기에서 보니 오히려 슐레마니에 사원의 전

체 모습을 잘 볼 수 있어 좋다.

 

 

 

 

 

 

대학 안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어딜봐야할지도 모르겠고 정문은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잠시 쉬면서 여행 책자를 뒤적여 보는 우리들

 

 

 

 

다시 기운을 차려 대학 안을 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방학이라 그런지 학생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몇몇 사람들

만이 그늘의 벤취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운 건물의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강의실도 아닌 것 같고 도서실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무엇을 하는 공간인진 몰라도

역시나 텅텅 비어 있다.

 

  

 

 

 

본관 건물은 아니지만 문이 열려 있는  또 다른 건물이 있어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보았다.

 

 

 

 

이 곳에선 그나마 몇몇 사람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역시 거의 비어 있는 듯 보인다.  

 

 

 

 

 건물 내부에 있던 동상

어떤 학자의 동상이 아닐까 내맘대로 짐작해 보지만 누구의 동상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더 궁금했던 것은 이 조형물이 누구의 동상인가 하는 거보단 이 조형물이 담고 있는 의미....

균열된 지구처보이는 구의 형상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건물에서 나와 베야짓 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들.

 

 

 

 

 

 베야짓 탑

19세기 초에 지어져 화재 감시용 망대로 사용되던 탑  

 

 

 

 

 

 

베야짓 탑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지니 본관 건물 앞쪽이 보이고 본관 건물 앞에는 산책로 및 숲을 방불케 하는 캠퍼스 정원이

펼쳐져 있다. 본관 건물엔 들어가봐야 이미 본 것들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 건물 안을 살펴보는 건 포기하고 우리는 캠퍼

스 정원의 산책로로 들어 섰다. 

 

 

 

 이스탄불 대학의 정문에서 본관에 이르는 길

 산책로를 걸으며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신나게 뛰어보기도 하고 장난도 치며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즐겁게 뛰고 걷고 하는 사이 이스탄불 대학의 정문에 이르른 우리들. 

 

 

 

 

 

 이스탄불 대학 정문과 베야짓 광장의 비둘기(左) & 베야짓 자미(右)

이스탄불 대학의 정문을 나섰더니 베야짓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비둘기들...세계 어느 곳에서나 그랬던 것처럼 광장의 주인은 역시 비둘기들인가 보다. 

'그래도 베네치아 산마르틴 광장의 비둘기들처럼 마구 달려들지는 않네.'

베야짓 광장의 오른쪽에 있는 자미는 베야짓 자미이다. 파티의 아들 베야짓(바야짓)2세의 자미로 1505년에 완성된 자미라고 한다.   

 

 

 

 

우리는 이제 베야짓 자미를 지나 그랜드 바자르로 가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줄 몇 가지 선물을 고를 참이다.

그랜드 바자르로  

 

  

 

 

 

추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슐레마니예 사원- 

 

 

 

 

이제껏 멀리서만 수차례 올려다 보며 아름답다고 느꼈던 슐레마니예 사원을 우리는 쉽지 않게 찾아내었고 드디어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사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처음으로 맞아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묘비들. 이 사원 안에 세기의 사랑을 했다는 술탄 슐레이만과

휴렘의 묘소가 있다는 것은 책자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입구부터 무덤들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바다.

무덤들을 본김에 우리는 슐레마니예 사원의 내부를 보는 것보다 먼저 슐레이만과 휴렘의 묘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슐레마니예 사원 뒷편에 있는 이것이 오스만 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술탄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술탄 슐레이만과 노예

던 그의 아내 휴렘의 묘소다. 죽어서도 휴렘과 함께 있고 싶었던 슐레이만의 유언에 의해 미마르 시난이 만든 것으로 오스만

터키의 묘소는 원래 단순한 다각형 본체에 한 개의 돔이 얹혀 있는 형태였으나 슐레이만과 휴렘의 묘소는 팔각형 본체에 

잡한 구조로 돔이 배치되어 있고 아케이드로 둘러싸여 있다. 건축 전문가에 따르면 이라크 사막에 이와 비슷한 건축 양식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미마르 시난이 예니체리 군단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많은 건축물을 보았기에 외국의 건축

양식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고 한다.       

 

 

 

 술탄 슐레이만의 묘소

술탄 슐레이만은 터키인이 주저하지 않고 가장 위대한 술탄으로 꼽는다는 인물로 오스만 제국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으로 만든 인물이며 오스만 제국의 입법 체계를 탄생시킨 인물이기도 하단다. 오스만 제국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세계사에 당당히 올려

놓았으며 육해상의 실크로드를 완전히 장악하고 유럽인들에게 오스만을 공포와 경외의 대상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한 이런 대단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여인이 바로 휴렘이다. 

 

 휴렘의 묘소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문화적, 정치적, 학문적으로도 완벽했던 그(술탄 슐레이만)가 사랑하게 된 여인은 노예로

끌려온 여인 알렉산드리아 리즈오스카였다. (하렘에 들어 온 이후 록셀란 휴렘이란 이름으로 불린...)  슐레이만은 휴렘만을 사랑했고 하렘

내 다른 여인들에게는 일체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슐레이만이 휴렘을 만나기 전 그의 아들을 잉태했던 마히데브란을 제외하고는

하렘에서 슐레이만의 얼굴조차 제대로 본 여인이 없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휴렘에 대한 슐레이만의 일편단심을 우려한 술탄의 어머니가

그에게 다른 여인들을 직접 데려다 주기까지 했지만 그 또한 모두 허사였다고.

오스만의 술탄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대리자였고 현실적으로는 제국의 후계를 튼튼히 하고 내부 권력 다툼을 막기 위해 아내를 들일 수 없었으나 

 슐레이만은 휴렘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오스만의 전통을 깨고 휴렘과 결혼하여 오스만 최초의 결혼한 술탄이 되었고, 그녀에 대한 사랑때문에

후계자 문제에 그녀의 개입을 허용한 것이 결국 왕위 계승권 다툼의 시작이 되어 그의 빛나는 업적에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다.

  

 

  

 

 

슐레이만과 휴렘의 무덤을 둘러 보고 슐레마니예 사원의 내부를 보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슐레마니예 사원은 대대

적인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미나레만 보수중인 줄 알았는데.... 

 

 

슐레마니예 사원은 오스만 제국 최전성기를 쌓은 슐레이만1세의 모스크로 슐레이만 즉위 30년째인 1550년에 착공하여 7년

후인 1557년에 완공된 사원이다. 슐레이만은 터키가 낳은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에게 최고의 기술을 사용해 지금까지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건축물을 지어보라 명령했는데 예술가로서 가장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제국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국가적

대사업을 의뢰받은 미마르 시난은 설계도도 없이  이슬람 최초의 완벽한 돔을 가진 이 건축물을 만들어 그의 명성을 한층 드높

였다고 한다.또한 이 사원은 수학자이기도 했던 미마르 시난에 의해 최고의 耐震  설계로 되어 현재까지 한 번지진으로

인한 보수 공사를 거치지 않았다고.

슐레마니예 사원엔 다양한 부속 시설이 있다. 여섯 개의 학교, 연구소 병원, 극빈소, 무료 급식소, 상인들의 숙소, 상점 등이 그

것이다.

슐레마니예 사원의 4개의 미나레는 이스탄불이 수도로 정해진 이래 슐레이만 대제가 4번째 군주임을 나타내며,  미나레의 10

개의 셰레프(발코니)는 오스만 이래 10번째 군주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골든혼(금각만)에서 본 슐레마니예 사원

슐레마니예 사원은 골든혼이 내려다 보이는 구시가의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현재도 그런 듯 보이긴 하

지만 당시 길도 그다지 넓지 않고 서민적인 분위기가 농후하게 남아있는 곳이었다.슐레이만 대제는 어째서 이런 곳에다 사

원 지으라고 한 것일까.  아마도 슐레이만 대제가 맘만 먹었다면 톱카프 궁전과 아야 소피아 가까운 곳에 모스크를 짓는 것

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곳이 아닌 이 지역을 선택했다.  이유는 서민들이 땀 흘려 일하며 생활하는 저잣

거리와 가까운 곳을 고른 것이란다. 그래야 극빈원이나 무료 급식소, 무료 시술원 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테니까.

아무리 봐도 그는 참 괜찮은 술탄이었던 듯 하다.    

 

  미마르 시난

미마르 시난은 오스만의 전성기였던 슐레이만 대제의 시기에 등장하여 오스만 건축의 중흥을 이끈 인물이다.  99세로 그의

생애를 마치기까지, 슐레이만을 포함한 3명의 술탄을 섬기면서 94개의 교회와 57개의 대학, 35개의 궁전과 22개의 묘소,

17개의 무료 급식소 등 약 370여 개의 크고 작은 건축물을 직접 설계하거나 지휘.감독하였다. 

 


 

 


비잔틴 양식의 돔 지붕과 이슬람 양식의 미나레, 페르시아풍의 내부 장식을 결합한 당대 최고의 건축물 슐레마니예 사원

 

 

  

 

 

현재 공사중이라 안타깝게도 볼 수는 없었지만 슐레마니예 사원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16세기 오리지널 수공예품으로 스테

인드 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햇빛은 돔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기하학적 식물 문양과 코란 문구를 응용

한 화려한 장식과 교차돼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공사중이라 사원의 내부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지만 이 곳에서 할례식을 하려는 소년을 보게 되었다. 할례는 이슬람교도 남자들에게 중요한 의식으로 현재는 의사가 담당하고 있다고.

멋진 의상을 입고 있는 게 기분이 좋은건지 계속해서 싱글벙글인 소년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고맙게도 몇 번이나 포즈를 취해 주었다. 

 

 

 

 

 

슐레마니예 사원을 돌아보고 사원을 나선다.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는 옆문쯤에 해당되고 아마 이쪽이 정문에 해당되는 곳이었나 보다.

'처음에 이쪽으로 들어왔으면  묘비들 때문에 놀라는 일은 없었겠지.'

 

 

 

 

 

사원 앞에 늘어선 상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오늘의 점심은 햄버거와 콜라.

딸 아이 뒤쪽으로 수박을 먹는 여인들이 보이는데 정말 먹고 싶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거의 비어있는 지갑 때문에 순간순간 초라한 기분. ㅜㅜ 

 

 

 

 

차이잔 셑트라던가 터키 여행의 기념이 될만한 물건들을 팔던 가게 

 

 

 

 

 

 

이스탄불 대학에서 본 슐레마니예 사원

 

슐레마니예 사원을 나와 점심까지 해결한 우리가 다음 코스로 찾아간 곳은 슐레마니예 사원 근처에 있는 이스탄불 대학이다.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이집션(이집트) 바자르-

 

 

 

 

 

 이집션 바자르

예니 자미 옆(갈라타교 정면), 에미뇌뉴 선착장 맞은편엔 사람들의 활기로 넘치는 곳이 있다. 터키어로는 '므스르 차르쉬스'

우리말로는 '이집트 시장' 이라는 곳이다. 이집트에서 이스탄불로 운반되어온 향신료 시장이 섰던 것으로 유명해 이집트 바

자르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이집트 바자르는 이스탄불 여행자들이 꼭 한 번은 찾아가는 필수코스 중 하나인데 그랜드 바자르처럼 크고 화려한 맛은 없

지만   터키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물건값도 그랜드 바자르보다 싼 편. 

 

 

 

 

시장은 빨간 벽돌 건물 안 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옆 쪽에도 있었는데 이 곳에선 주로

이름 모를 곡물들과 채소의 씨앗, 그리고 화분 같은 채소를 심어 기르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팔고 있었다.  

 

 

 

 

 

이집션 바자르의 입구 중 하나

 

 

 

 

 

 

 

건물 밖의 시장을 둘러 보다가 건물의 입구가 보이길래 안으로 들어 갔는데 건물 안에는 짐작했던대로 역시 향신료 파는 곳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래서 이 곳의 또 다른 이름이 '향신료 시장'이란다.  그 밖에도 차종류와 건과류(대추,무화과등), 그리고 기념품도 팔고 있었는데 선물용으로 뭔가를 사고 싶었지만 나중에 그랜드 바자르도 들릴 예정이라 미리부터 짐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 곳에선 주로 구경만 하기로 했다.  

저렴한 이블아이 팔찌는 몇 개 샀지만..  

 

 

  

 

 

건물 안쪽을 대강 둘러 보고 나왔는데 주변은 역시 계속해서 시장이다. 

 

 

 

 

 

 

시장 구경을 하며 우리는 지금 슐레마니에 사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도상에서 보면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곳 같았는데 시장 골목이 복잡해서 방향 감각을 잃는 바람에 찾아가는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이 쪽의 시장은 의류 시장인 것인지 주로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판매하는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젊은 여성들은 원색의 히잡을 선호하는 반면 나이 든 여성들은 단색의 히잡을 선호한다는데 상점에 걸려 있는 히잡들은 아무래도 젊은 여성들을 염두에 둔 탓인지 휘황찬란할 정도로 울긋불긋 원색적이다. 하나 하나 보면 참 촌스러워 보이는데 젊은 여자들은 이렇게 촌스러워 보이는 히잡을 의상과 멋스럽게 잘 매치시키는 것 같다.

여름이라 그런지 몰라도 난 히잡을 쓴 여인들을 보며 참 안됐단 생각을 많이 했는데 히잡으로 머리를 가리는 것이나 긴 옷으로 몸을 가리는 것이 이슬람적인 시각으로 보면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니  어쩌면 내 생각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할례식 때 입는 옷

 

 

 

 

 

 

J군의 카메라에 우연히 찍혀서 J군이 보내준 사진이다.

이런 스냅 사진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걸... 

 

 

  

 

 

 

정오가 되어 슬슬 배가 고프던 참인데 마침 바나나를 낱개로 파는 노점상이 보인다. 침이

꼴까...왠만하면 하나 사먹고 싶었는데 Mr. Lee가 흥정을 하다 그냥 가자네.좀 서운하긴

한데 정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는게 좋을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베야짓 탑이 보이는 걸 보니 슐레마니에 자미도 근처에 있을 것 같다. 지름길을 놔두고 돌

아돌아 온 것 같긴 하지만 덕분에 시장 구경은 잘 한 듯^^.  

 

 

 

 

물담배

 

  

 

 

어두운 예니 자미 안에서 사진을 찍느라 카메라 기능 설정을 바꾸었다가 밖으로 나오면서 다시 설정을 바꾸는 걸 잊은 모양이다.

예니 자미 이후의 사진들은 산토리니 피라마을 사진들처럼 마구 흔들려 모두 유령이라도 나올 듯한 심령사진이 되어 버렸다.

'속상해' 

 

 

 

 

  

추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예니 자미 & 예니 자미 주변 풍경-

 

 

 

 

 

 

바푸르에서 내린 나는 아직도 여전히 들떠 있는 마음을 한 채 예니 사원으로 향한다.

이 곳을 지나 다닐 때마다 여러 차례 보았던 그 곳.

자미들은 안이나 밖이나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아직까진 자미들 간의 차이를 잘 못느끼겠지만

어차피 지나가는 길에 있으니 한 번  들려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 예니 자미 앞 풍경

 

 

 

예니 자미 앞은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고 있는 듯 하다.

갈라타 교에 에미뇌뉴 부두와 시장(이집션 바자르)이 있고 버스 종점이기도 한 곳이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몫 좋은 이런 자리가 비어 있을리 만무다.

무언가를 판매하는 상인과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판매하는 물건 역시 수공예 악세사리처럼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물건들 같았다.

 

 

 

 

에브루

<에브루>라는 이것 또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터키의 전통 공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블링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그림)

 

 

 

 

하트(HAT) 

터키에만 있는 문자장식예술인 하트(HAT)는 과거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지금도 집안 장식용으로 많이 쓰

인다. 동서양의 서로 다른 2개의 언어인 라틴어와 아랍어가 어우러져 멋진 예술품을 만들어 낸다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초상화를 그려 주는 곳

 

 

 

 

 

 헤나 염색

헤나로 손등이나 팔 등에 문양을 그리면 염색이 돼서 한동안 문신처럼 피부에 문양이 남아 있게 된다.

뭐 그리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진 않지만... 

 

 

 W군이 이 헤나 염색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가 예니 자미를 둘러 보고 올 동안 W군은 헤나 염색을 하고 있기로 했는데...

으으으....나중에 보니 팔뚝에 이름 정도 써주고 10리라를 받았다던가....순전 바가지 요금인 것 같다.   

몇 글자 안되는 이름이 10리라면 그 요란한 문양은 도대체 얼마라는 건지???

  

 

 

 

 

 

 

    ● 예미 자미

 

 

 

'새로운'이란 의미를 가진 예니 사원은 1597년 메흐메트 3세의 모후가 착공을 명령해 메흐메트 4세 때 완성된 사원이다.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짧은 옷차람으론 사원에 들어갈 수가 없기에 Y는 사원에서 준 천을 두른 후 입장했다.

'Y에겐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 되겠지.'

 

 

 

 

예니 자미의 돔

분명히 자미마다 내부 꾸밈이 조금씩 다를 텐데도 이상하게 내 눈에 그게 그것인양 비슷해 보이고 전에 보았던 자미가 어

떠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유럽 여행 때 수 많은 성당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낄 때가 간혹 있긴 했으나 자미만큼은 아

닌 듯 하다. 너무나 비슷비슷한 느낌의 자미들.

 

 

이 전등모양도 그렇고...

 

 

 

 

 

무슨 용도인지는 몰라도 자미 내부에선 경전 읽는 걸 촬영 중이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NG, NG, NG의 반복이다. 

 

 

 

 

 

 

 

 

 예니 자미 입구에서 본 풍경

 

예니 자미에서 나와 이집션 바자르로 고고씽=3=3

 

 

 

 

 

 

 

추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보스프러스 해협 건너기- 

 

 

지난 밤, 카파도키아 괴레메를 출발한 우리는 아침무렵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야간 이동으로 피곤한 몸이지만 오늘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 바쁘다.

'바자르(시장) 구경도 해야 하고 자미도 몇 군데 더 돌아봐야 하고, 이스탄불 대학, 지하 궁전, 그리고 로띠 언덕에도 꼭 가봐야겠고....'

'휴~ 어떡하지? 가보고 싶은 데가 너무 많잖아'

지난 이틀간 시간을 더 알뜰히 분배해서 쓰지 못한 게 새삼스레 너무 안타깝다.

초스피드로 돌아다닌다 해도 결국은 많은 곳을 포기해야 할텐데....가장 후회가 적게 남도록 우선 순위를 잘 정해서 돌아다녀야겠다.

두 여자와 세 남자가 함께하는 이스탄불 여행기... 시작~

 

 

  

에미노뉴 선착장

내가 오늘 이스탄불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보스프러스 해협 크루즈와 로띠 언덕에 올라가보는 일이다.

배를 꼭 타보긴 해야겠는데 보스프러스 해협 크루즈는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번

에도 '꿩 대신 닭' 이라고 우리는 보스프러스 해협 크루즈 대신 연락선을 타고 보스프러스 해협을 건너 이스

탄불의 아시아 지구엘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행선지를 정해야겠는데 아시아측 철도의 기점인 하이

다르파샤 도 보고 싶고 서민적인 주택가인 위스큐다르도 보고 싶어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고민이 되었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마침 하이다르파샤 행은 갈라타교 건너 카라쿄이 부두에서만 출발하는지라 더이상

고민할 것 없이 에미노뉴 부두에서 탈 수 있는 위스큐다르 행 바푸르를 타기로 했다.  

바푸르(연락선)를 타려면 선착장 앞에 있는 자동 판매기에서 제톤을 구입해 개찰기에 넣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나는 바프르를 탈 때 사용하는 제톤이 트램탈 때 사용하는 제톤과 같은 것인 줄 알고 지난 번에 트

램 탈 때 미리 구입해 두었던 제톤을 개찰기에 넣었다.그런데 내 생각대로라면 당연히 열려야 할 개찰구가 꿈

쩍도 않하고 열릴 생각을 않는 거다. 알고 보니 바푸르를 탈 때 사용하는 제톤과 트램 탈 때 쓰는 제톤이 서로

달랐던 것. 가격도 1.4리라로 똑 같은데 말이다.  

 

Tip:보스프러스 행, 카드쿄이 행, 위스큐다르 행, 하렘 행 등..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배를 타는 곳이 다르니

     타는 곳에 주의 할 것.

 

 

 

아깝게 제톤 하나를  날리고 허둥지둥 판매기에서 힘들게 제톤을 구입해 안으로 들어갔건만 그 순간 출발 시각에 늦었다고 더 이상 배에 오를 수 없게 쇠사슬을 걸어 가던 길을 막아 버린다. 배가 떠난 것도 아니니 봐달라고 사정해봤지만 요지 부동이다. 생각해보니 한 사람 두 사람 봐 주기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봐줘야할지 선이 무너지고 그러다 보면 배가 제 시간에 출발하는데 지장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하는 수 없이 체념하고 30분간 다음 배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나의 실수로 나머지 사람들이 금쪽 같은 30분을 잃게 한 것이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겠다.

 

 

 

 

 

바푸르가 한시간에 2대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없이 30분은 기다려야 겠구나 생각했는데

배가 떠난 후 얼마 안있어 어느새 다른 바푸르가 들어왔다.    

 

 

 

바푸르에 앉아서 출발을 기다리는 우리들

 '일단 배에 오르고 보니 기다림도 지루하질 않네.'

 

 

 

 

드디어 출발~

승선장이 점점 멀어져 가고 서서히 바닷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 상쾌해."

 

승선장 뒤로 왼쪽부터 예니 자미, 이집션 바자르, 슐레마니에 자미

 

 

 

 신시가지의 갈라타 탑과 알록달록한 건물들

 

 

 

 

증명샷~ 

  

 

 

 

 바람에 취한 Y 

 

 

 

 

 

 하이다르파샤 기차역으로 가는 배를 타고 싶다면 카라쿄이에서...

 

 

 

 

 

 

이름 모를 자미 하나하나까지도 멋지다고 느껴진다.

(저 이름 모를 자미는 클르츠 알리 파샤 자미일까?)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 왼쪽의 구시가지와 오른쪽의 신시가지 

 

 

 

 

 

 

지난 번에 돌마바흐체 궁전갈 때 시계탑은 보았지만 돌마바흐체 자미는 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좋다.

 

 

 

 

 

돌마바흐체 궁전 

 

 

 

 

 

 보스프러스 대교

 

아시아 쪽 이스탄불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Y와 두 남자

다른 한 여자인 나는 이 사진을 찍고 있는 중이고 다른 한 남자 또한 반대편 쪽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중.

 

 

 

 

 

 

사진 찍느라 즐겁고, 바닷 바람에 즐겁고...그러는 사이 아시아 지구의 위스큐다르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위스큐다르 부두 

 

 

우리를 제외한 모든 승객이 배에서 내렸다.

우리도 처음엔 위스큐다르에서 내려 아시아 땅도 좀 밟아볼 계획이었으나

아무래도 오늘 계획한 곳을 하나라도 더 돌아보려면 시간이 부족할 듯해

배에서 내리지 않고 그 배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편도 요금 1.4리라도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편도 요금으로 왕복까지 하니 내심 횡재한 기분이다.

 

 

 

 

 

'이쪽엔 모스크가 왠지 더 많아 보이는 걸.' 

 

 

 

 

 

 

부두에서 10 여분을 머물던 배는 유럽쪽으로 가려는 승객들을 태우고 또 다시 출발한다.  

 

 

 

 

    

 

건너편에 읹아 있던 아리따운 승객.

의상에 히잡을 조화롭게 매치시키는게 이 여인들의 멋을 내는 방법인 듯. 

 

 

 

 

 

 

바다위에 떠 있는 탑, 크즈 쿨레시(처녀의 탑)

처녀의 탑은 위스큐다르와 하렘 사이의 해안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앞바다에 떠있는 탑으로  현재는 로칸다와 전망 카페로

이용되고 있으나 원래는12세기에 비잔틴이 만든 요새였고 오스만 시대에는 운항하는 배로부터 통행세를 받던 감시소 겸 등

대였던 곳이라 한다.

저 탑에 얽힌 전설 하나...

비잔틴 왕의 딸로 태어났지만 뱀에게 죽을 운명을 안고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 왕은 그의 딸을지키기 위해 바다 한 가운데로

그의 딸을 보냈고 매 끼니때마다 하인을 시켜 음식을 전해주게 했는데 결국은 하인이 전해준 사과 바구니 속에 숨어 있던 뱀

때문에 공주가 운명처럼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   처녀가 뱀을 피해 숨어 지내던 곳이 바로 저 탑이고 그래서 저 탑의 이름이

<처녀의 탑>이란다.

이스탄불에서 일주일쯤 머물 수 있었다면 아마 저 곳도 필시 가보았을 텐데....

 

 

 

 

 짙푸른 바다를 가르고 달리는 빨간 배 한척

 

 

 

 

유럽 쪽  이스탄불은 가까워지고...

 

 

아시아 쪽 이스탄불은 멀어지고...

단 몇 십분 사이에 대륙과 대륙을 왔다갔다 하다니...이 곳이기에 가능한 희귀한 경험이다. 

 

 

 

 

 

 

오늘의 첫번째 계획, 보스프러스 해협 건너보기... 대만족.

너무 좋아서 저녁 때 한 번 더 타보자고 했으나 결국은 시간이 없어 그 소망은 이루지 못했다.

'한 번 더 이스탄불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하이다르파샤 역행 바푸르를 타보는 일부터 시작할테야.' 

 

 

추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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