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27

 

 

 

Ranee in Paris

 -에펠탑-

 

 

리의 상징이자 건축 시공 역사에서 손꼽히는 기술적 걸작이라는 에펠탑.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에펠탑에 대한 환상은 별로 없었던 듯 하다.

에펠탑에 대한 환상이 있었더라면 일행을 졸라 분명 첫날 코스로 보았을 터인데 나는 그럴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먼저 보았어야 할 에펠탑을 자꾸만 뒤로 미루다 결국 에펠탑을 가까이서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할만큼 밤에 보는 에펠탑의 아름다움이 감동적이었기에 그 아쉬움이 더 크다.

에펠탑을 보며 다시 한번 하게 된 생각..

인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낮에 본 에펠 탑

 

 

해질녘의 에펠탑

   

 

                                                     ▲                                                                   ▲

                                         밤에 보는 에펠탑                                                에펠탑의 조명쇼      

 

 조명쇼는 해가 진 후 매시 정각마다 하는 것 같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 감동이 밀려 온다.

삼각대가 없어 실제보다 훨씬 못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여. 

 

 


 

유람선 안에서 찍었더니 흔들 흔들 그네 타는 에펠탑이 되어 버렸다.

 

 

 

 

☞ 에펠탑 사진은 '07 프랑스 모나코 카테고리에 것이 훨씬 낫습니다.

에펠탑에 관심 있으시면 그 쪽으로 이동해 보세요.

2006.07.27

 

 

 

*Ranee in Paris

 -세느강에서 유람선 타기-

 

 

박집에서 저녁을 서둘러 먹고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람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우리가 탈 유람선은 알마 다리에서 출발하는 가장 유명한 유람선 바토 무슈이다.

토 무슈 승선장이 민박집에서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번에 갈 수 있는 메트로가 없어 메트로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만 했다. 승선장에서 가까운 9호선 알마 마르소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걸어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 에펠탑이 보인다.

하지만 유람선에 승선할 시간이 또 촉박해졌기에 에펠탑은 유람선을 타고 나서 보기로 기약하고 서둘러 승선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것이 지상에서 가장 가까이 볼 수 있었던 에펠탑의 모습이 될 줄이야 그 때는 어찌 알았으랴.

유람선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11시가 넘어 있는 시각인데다 내일 새벽 일찌감치 스위스로 출발해야 하는 우리 일행들은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으므로 에펠탑에 가까이 가보기를 포기해야만 했었던 것이다.

지금도 여행에 대한 기억을 떠 올리다보면 가장 아쉬웠던 일 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승선장에 도착하니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여러 무리의 단체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부러워지는 순간.

힘들이지 않고 꼬박꼬박 가야할 곳, 보아야할 것 앞에 데려다 주니 어디 다리가 아플 새나 있겠는가.

다음에는 꼭 패키지 여행가야지 했었다 그 때는.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은 그러한 생각을 언제했었느냐 싶게 다음 여행도 기회만 된다면 배낭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도 그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거리를 걷고 하며 목적지를 찾아냈을 때의 기쁨이나 

그 나라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느꼈던 좀 더 밀접한 느낌들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토무슈 티켓

 

 

 

 

▲ 

유람선 승선

 

드디어 유람선에 올라 유람선 가장자리 쪽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유람선에서도 에펠탑이 보인다.

유람선 승선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무릅 쓰고 포즈를 취했으나

찍고 보니 사진 속의 나는 도무지 유람선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눈으로는 뭐든지 담을 수 있는데 카메라는 역시 엉터리다.

유람선은 이내 출발했고 해는 점점 자취를 감춰 세느강변은 조금씩 어둠 속의 황홀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틀담 사원을 지나며

   

 

 

  

  ▲

유람선 의 관광객들

 

유럽을 찾는 우리 나라 관광객들이 많긴 많은가 보다.

대영 박물관에도 루브르 박물관에도 우리 나라 말로 쓰여진 안내 책자가 있더니

이 곳에서도 불어로 시작해 영어, 독어, 서반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등

몇 나라 말로 바꾸어 가며 설명하는 방송이 나오더니 맨 마지막에 귀에 익은 한국어 설명이 나온다.

낯선 이국 땅에서 공식적으로 우리 말을 접할 수 있다는 게 감동스럽긴 했지만

우리말이 맨 마지막 순서라는 게 못내 아쉽다.

게다가 관광객들은 제 각각의 말로 어찌나 떠들어대던지

그 귀중한 설명을 거의 못듣고 말았다는 사실. 


 

 

2006.07.27

 

 

 

Ranee in Paris

 -오페라 하우스-

 

 

르세 미술관에서 나와 아픈 다리를 좀 쉬어 주느라 잠시 앉아 있었더니 어느덧 시간은 6시 30분 가까이 되고 있다.

민박집에서의 저녁 식사는 7시부터 1시간 정도.

이제 민박 집으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해지기 전에 보아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저녁 식사 시간 때문에 멀리 있는 것들은 포기하고

민박집으로 가는 8호선 메트로를 타고 가는 도중에 내려서 볼 수 있는 것을 보기로 했다.  

 

 

 

 

오페라 하우스

까퓌신 대로와 오페라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 한복판엔 화려한 모습의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모나코에 있는 그랑카지노를 설게하기도 한 샤를 가르니에의 작품으로

 돌과 대리석이 혼합된 회색빛 건물에는 군데 군데 금박이 입혀져 있고 가운데 돔 위에는 황금 하프를 든 청동의 아폴로상이 있다.

 

 

 

 

 

 

오페라 거리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으로 백화점과 중저가 쇼핑몰, 다양한 상점과 면세점이 많은 쇼핑의 거리이다.

 

 

 

 

 

 

방돔 광장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없어서 가보지는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았다.

가운데 높게 서 있는 청동탑은 44m로 나폴레옹의 오스텔리츠 승전을 기념하여 전리품이었던 1,200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메트로를 타고 마들렌 역에서 하차 5분 정도 걸으면 그리스 신전 같은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마들렌 사원이다.

마들렌 사원은 높이 20m의 코린트 양식 기둥이 서있는 고대 그리스 신전풍의 기독교 사원으로

정면을 장식한 조각은 르메르작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만든 것. 52개의 기둥이 사원 전체를 둘러 싸고 있다.

 

 

 2006.07.27

 

 

 

Ranee in Paris

 -오르세 미술관-

 

  

몽마르뜨에서 그림까지 그리고 나니 오르세 미술관 관람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몽마르뜨 광장 쪽으로는 가보지도 못했는데.

시간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이 여행에서는 도무지 차 한 잔 마실 여유라는 것이 없다.

서둘러 오르세 미술관 도착해 보니 벌써 4시, 티켓 끊고 전시실 찾고 하다보면 폐관 시간까진 2시간도 남지 않았다. 이 넓은 미술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면 과연 몇 점의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을까. 아니 감상은 관두고라도 몇점의 작품이나 볼 수 있을 것인가.

순간적으로 7.5유로나 주고 입장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스쳐지나갔지만 여기까지 와서 안보고 돌아서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티켓을 끊었고, 유명한 작품만 골라보자는 생각으로 보물 찾기 하듯 뛰다시피하며 유명한 작품들을 찾아 나섰다.

미술관 안으로 입장하기 위해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살짝 자존심이 구겨질라고 했었다는 거.    

 

 

  

 

오르세 미술관 티켓 

 

 

 

  오르세 미술관 앞

 

 

 

오르세 미술관의 전경

 

 

 

 

 

오르세 미술관의 내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미술품의 보고, 센 강변의 아르누보 양식의 오르세 역을 개조해 19

86년에 개관한 미술관으로 1848~1914년까지의 회화, 조각, 사진, 공예 등을 3개 층에 전시하고 있다.

특히 마네, 모네, 드가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 진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어 입장객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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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셰 미술관엔 이런 작품이....

 

 

르세 미술관에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인상파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밀레, 고흐, 고갱, 르느와르, 쿠르베(사실주의), 모네 등의 그림과 로댕의 조각들 등등...  

 

 

 

밀레 <만종>

하루의 일과를 끝낸 한 농부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삼종

기도를 드리고 있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일하며 가난하고 피곤한 삶을 감사하

는 이들 부부의 기도는 하나의 경건 자체를 나타낸다.그 자신은 결코 농부가 아

니었지만,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던 밀레는 순박한 농민의 이미지를 빌어 전

원의 순수함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였다. 

그는 노동을 하늘의 섭리로알고 묵묵히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통해 도시와 상

반되는 전원의 가치를 종교적 색채로 그려낸 것이다.이 작품은 근대화를 거치면

서 전원 생활을 그리는 세계 각국의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밀레 <이삭줍기> 

 

 

 

 

 

 

고흐 <오베르 교회>

 

 반 고흐의 예술 한마디로 말하기는 무리다. 이 화가의 개성은 복잡하고 일반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짧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11890년 6월에  오벨 슬 오와이즈에서 제작되었다. 예술가가 고뇌한 최후의 시기에 속한 작품이다. 반 고호는 사실 이 작은 촌락으로 도피했었다. 여기는 이미 세잔느나 피사로가 이전에 체재한 곳으로 산 레미의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후, 같은 해 5월에 여기에 왔다. 오벨에서는 극히  짧은 기간 평정을 유지했지만 곧 환각의 청랑함과 실의의 발작이 번갈아 계속되고 그리고는 광기가 되었다. 자매 월에게 쓴 "마을 교회의 큰 그림을 그렸다. 구성은 교회의 짙은 보라빛, 하늘은 짙은 청색과 코발트 청색, 스탠드글라스의 모양을 군청, 지붕은 자색이고  일부는 오랜지색 ... " 그러나 반 고호는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아니 그릴 수 없었다. 극적인 감각, 폭력적인 광기는 그림도구를 농밀하게 두텁게, 뒤틀어서  마구 칠했다. 반 고호에게 하늘은 이미 온화한 하늘이 아니고 맑았지만 그러나 어두운 음기 없는 입장을 나타내고 긴창과 같은 줄기상나무가 뒤틀려서 불꽃과 같이 태양을 마치 작열하는 강처럼  나타내고 있다. 칠해진 그의 그림을 결국 그의 혼을 나타내고 있다. 반 고호는 고뇌의 중하와 남자의 낙담으로 모든 것을 뒤틀어진 변모로 해버렸다.

 

출처 : http://www.hakane.com/museum/orsay/orsay08.htm

 

 

 

고흐 <닥터 가셰의 초상>

 

 

 

 

 

고흐 <파란 자화상>

 

 

 

 

고흐 <아를의 여인>

 

 

 

 

 

 

 

 

 

 

 

 

 

 

 

 

 

 

 

 

  

  

고갱 <아레아레아, 기쁨>

 

 

 

고갱 <타이티의 여인> 

고갱의 예술은 시민 생활에서 도피하여 생환이 보다 원시적인,보다 사실적으로, 좌나 성실한 새로운 세계를 찾아서 기 묘함조차 있다. 시민에서 결별하고 가족, 자식들, 일을 버리고, 영광도 부도 거절했다. 이것은 잘 알려진 고갱의 매력적인 생활이다. 해안의 두사람의 여인 그림은 1891년에 그리고 그 얼마 후 고갱은 실제로 타이티에 도착했다. 이 체재 동안(1893년에 출발하여1895년 죽을 때까지 ) 원시적 인 미술을 발표했다. 형태는 힘있고 견고한 평면적이고 자연의 야생적인 색채이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성실함을 캔버스 위에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마오리의 예술을 복사한 것은 아니었다. 마오리를 농해 그 개인의 일이고 마음 속의 시정의 변모이다. 만약 고쟁이 원시생활을 했다변 이미 그것은 원시가 아닐 것이다. 그의 문제는 새로운 인간 문제이고 시민생활에서 도망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농해 순수한 세계의 형태를 생각해 재발견된 무구의 자연 속에 보다 고도의 종교적인 감각이 있다.

 

출처:  http://www.hakane.com/museum/orsay/orsay07.htm

 

 

 

 

슬러 <서커스>(왼쪽)

 

슬러는 인상파 회화의 중요한 대표자의 한사람이다. 광학 또는 물리차이 발전한 시대에 예술도 또 과학적으로 고안된 결과로서 독특한 수법없이 이뤄졌다. 의식적으로 두개의 색은 인접 시켜서 각각이 다른 색을 영향 끼치는(사갈의 표현에 의한 것이다. ) 슬러는 점화법 또는 점 묘법이라 불리는 테크닉을 창조했다. 이색의 점에 의해 캔버스를 덮어 매우 가벼운 느낌과 빛이 빛나는 효과적 표현을 하고있다. 이 그림은  1890년의 독립 살롱에 출품되었다. 전람회 개최 중 3월에 슬러는 불의로 죽어버리고 색의 디자인은 평면에 불완전한 채로 남았다. 보통 예술가의 기술은 고도의 결과를 쫓아나아간다. 미진한 황금 입자속에 침투한 딱딱한 마네킹 인형과 같은 인체가 플래쉬의 빛속에 고정되어 있다.

 

출처: http://www.hakane.com/museum/orsay/orsay05.htm

 

 

 

마네 <피리부는 소년> 

 

 

 

 

  

 

 

마네 <올랭피아> (위쪽 누드화)

 

 "그래 난 창녀다. 그게 도대체 뭐가 어쨋단 말이야?

  마네(1832~83)의 <올랭피아>는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다. 1863년 제2제정기의 졸부 취향을 대변하는 캬바넬의 <비너스의 탄생>과 나란히 그 해의 대표적 누드상으로 제작된 <올랭피아>. 인상파의 앞길을 밝힌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당시 비평가와 일반인들을 엄청나게 격분시켰다. 창녀를, 그것도 거만하게 관객을 쏘아보는 현실의 창녀를 버젓이 그려놓다니! "지나는 사람마다 '자기의 돌'을 집어서 그녀의 얼굴에 집어던졌다"고 신문이 쓸 만큼 <올랭피아>가 초래한 스캔들은 대단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위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나 당시의 분노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누드란 모름지기 비너스나 신화속의 여인의 고결한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 그려지는 것인데,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현실의 모모한 창녀가 그려졌다? 오늘날 캬바넬의 <비너스의 탄생>과 마네의 <올랭피아>를 나란히 놓고 보면 사실 여인 누드를 그렸다는 점에서 두 그림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너스의 탄생>이 더 에로틱한 포즈를 취하고 있고 당시 부르주아의 천박한 취향을 반영하고 있어 오히려 더 진짜 퇴폐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때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비너스의 탄생>을 자랑스럽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올랭피아>는 혹독한 욕설에 치여 마네가 죽을때까지 그의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사회의 위선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이 '창녀 그림'은 그 어떤 살롱파 그림보다도 순결해 보인다.
 
  그림을 보면, 올랭피아는 길게 가로누워 있고 오른쪽 코너에 흑인 여성과 검정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흑백 대조가 무척 강한 그림이다. 올랭피아의 살색과 침대 시트는 무척이나 밝고 환한데, 배경이 어두컴컴하다. 흑인 여성과 검정 고양이가 등장한 것도 그 흑백 대조를 돕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강한 대비를 조장한 것은 당연히 흰 색의 부각을 의도한 것이다. 앞서 공쿠르 형제의 밝고 자신감에 찬 시대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 희열에 창녀가 함께 한 것은 그만큼 시대와 현실에 대해 정직하고자 하는 마네의 근대적 작가정신 때문이었다. 가면을 벗자, 밝고 환한 부르주아지 세계의 뒤안은 그 어느 곳보다 그늘지고 어둡다! - 그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물론 그것을 개혁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있는대로 보자는 것이었다). '현실 직시' 문제로 빚어진 <올랭피아> 스캔들은 기실 그 뒤 인상파 작가들이 계속 겪게 될 숱한 사회적 몰이해와 냉대의 전조였다.
 
  - 이주헌,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중에서
 
 
 
 
 

 

 

 

 

 

 

로댕 <지옥의 문>

 

 

 

▼ 생각하는 사람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그는 꿈을 꾼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몽상가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로댕이 밝힌 '생각하는 사람'의 의미다. 가장 대중적인 로댕의 작품으로 통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위에 �아, 현제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들을 관조하고 있다.

 

 

 

▼ 아담(혹은 세 망령)

 

'지옥의 문'중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조각 '세망령'을 상징하는 '아담'.

지옥입구를 지키는 망령을 뜻한다.

 

 

 

▼ 파올로와 프란체스카(혹은 입맞춤)

 

단테 '신곡' 지옥편 5곡에 나오는 육욕의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13세기, 젊고 잘 생긴 시동생 파올로에 반한 프란체스카의 불륜 이야기를 묘사했다.'지옥의 문'에는 당초 '입맞춤' 부분이 있었으나, 로댕이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떼어냈다고 전해진다.


 

 

▼ 순교자

 

이 작품은 1889년 처음 전시된 이래 수많은 수정을 거쳤다. 순교자지만, 그 표정은 고통스럽다.
이는 로댕이 가진, 인간에 대한 진실 추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들


13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간 전쟁에서 적에 생포된 우골리노. 그는 '기아의 탑'에 투옥되자, 배고파 죽은 자신의 아들 시신을 먹고 '마지막 생존자'가 됐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다.
로댕은 이 불륜의 이야기를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의 얼굴조각으로 표현했다.


 

 

 

▼ 허무한 사랑


 

단테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이야기. 육욕죄를 지고 형벌을 받은 남자를 등에 업고 도주하는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 여인의 등은 깊이 파였으며, 남자의 토르소는 평평하고 다리가 늘어져 있다. 이중 젊은 남자의 얼굴을 로댕은 '슬픔의 머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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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관 시간에 쫓겨 눈도장만 찍다시피 하며 그림을 보고 오르셰미술관을 나왔다.

미술관 앞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는걸까...생각보다 사람이 꽤 많다.

 

 

 

 

미술관 맞은편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거리의 악사가 눈에 들어 온다.

지쳐서 그러는 건지 자세가 좀 ...

 

 

 

 

 

 

 

 

 

 

세느강 저 편으로 루브르박물관이 보인다. 

 

 

 

 

 

2006.07.27

 

 

 

Ranee in Paris

 -몽마르뜨 언덕-

 

 

 

사람들은 파리하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에펠탑? 개선문? 아니면 루브르 박물관? 

글쎄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몽마르뜨 언덕을 떠올리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에서의 커피 한잔,

보통의 여자라면 한번쯤은 상상해 본 장면이 아닐까.  

 

 

 

 

 

  

그러나 메트로에서 내려 목적지를 향해 올라가는 골목길은  과연 내가 몽마르뜨를 찾아온 것이 맞는가 싶게 낭만적인 분위

기와는 거리가 멀다.

비록 내 상상 속의 몽마르뜨와는 동떨어진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파리는 역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도시구나 했었는데 이 골목의 가게들을 보니 흡사 우리네 시장

에서 본 풍경과도 같이 산처럼 쌓여 있는 물건 중에 내 것이 될 물건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인다.

시간이 부족해 구경은 제대로 못했지만 시간이 있다면 상자 밑바닥까지 뒤져가며 보물 찾기 하듯 물건을 골라보고 싶었다.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올라가다 보면 이내 평지가 나오고 이 곳에선 회전목마가 주인을 기다리며 서있

거나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땐 사람들이 많아서 잘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주인을 마냥 기

다리고 있는 목마가 외로워 보인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 '비포선셋' 말고도  '다빈치코드'와 '아멜리에'도 보았는데 영화 아멜리에

의 배경이 된 장소가 바로 이 몽마르뜨 언덕으로 영화 속에서도 이 회전 목마를 몇차례 본 기억이 난다. 

 

 

 

 

 

 

 

   

사크레쾨르 성당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찍기 ^^

 

 

 

 

 

 

'성스러운 심장'이란 의미의 사크레쾨르 성당

몽마르뜨 언덕에 솟아 있는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의 순백의 사원으로 , 달걀 모양의 돔이 인상적이다.

  

 

 

 

 

 

사크레쾨르 성당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가지의 모습

 

 

 

 

 

 몽마르뜨 언덕에서 그린 초상화

몽마르뜨에 왔으니 내 캐리커쳐 한 장쯤은 남겨야겠다 싶어 거리의 화가를 찾아 사원

뒤편으로 갔다. 그림값으로 25유로 달라는 것을 20유로에 흥정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거리의 화가는 캐리커쳐가 아니라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게다가 나를 하나도 닮지 않은.

나를 닮게 그려줬으면 더 속상했을지도 모르지만....ㅎㅎ 

나중에 보니 프라하의 카렐교에서도 수 많은 화가들이 초상화나 캐리커쳐를 그리는데

값도 더 저렴하고 (15유로 정도)  정말 똑 같이 그리는 것 같다.

굳이 몽마르뜨표 그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프라하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그 곳에서 그리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다.

 

  

 

  

 

 

몽마르뜨 언덕의 기념품 가게와 카페

 

 

 

 

 

 

 

 

 

그야말로 몽마르뜨 언덕이다.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이 자전거를 타고 내달렸던...

 

 

 

 

2006.07.27

 

 

 

*Ranee in Paris

 -노트르담 대성당-

 

 

록 연인과 함께는 아니었지만 일행과 함께 퐁네프 다리를 건너보고 이제 시테섬의 백미 노트르담 성당으로 이동할 차례다. 일행은 또 걸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굴뚝 같아 보였지만 오후까지 움직이려면 체력을 비축해야만 한다. 퐁네프 다리에서 노트르담 성당까지는 버스로 한 정거장인가 두 정거장 인가 밖에 안되었지만 버스를 타도 창 밖으로 구경할 수 있다고 일행을 꼬셔 버스를 탔다. 일일권을 이미 구입한 상태이니 대중교통도 충분히 이용해주는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이 아닐까.

 

 

-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여행할 나라들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여러 편 골라 봤는데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는 '비포 선셋'을  보고 온 상태다. '비포 선셋'의 여러 배경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장소가 바로 세느강과 노틀담 성당이었는데 그 영화의 배경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게 정말 감격스러웠다.

 

 

 

- '성모 마리아'라는 뜻을 지닌 노틀담 성당은 루이7세 때 시작하여 1163~1345까지 3세기에 걸친 대공사 끝에 지어진 대표적 고딕 양식 성당이다.

 

 

  

 

 

 

 

- 성당 입구 세개의 정문에는 섬세한 부조가 조각되어 있는데 왼쪽 문은 성모마리아를 찬양하기 위해 맨 처음 지어졌으며 , 마지막 심판이라고 불리는 중앙문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온 예수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 문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두 천사를 둘러싸여 있고 그 천사들 뒤로 모리스 쉴리 주교(이 성당을 지으라고 지시한 )와 루이7세가 조각되어 있다.

 

 

 

 

 

 

 

 

 

 

-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매우 화려한데 특히 유명한 북쪽의 장미의 창은 중앙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가 새겨져 있다

 

2006.07.27

 

 

 

 

Ranee in Paris

-퐁네프 다리- 

 

'퐁네프의 연인'이란 영화 제목 때문에 이름이 낯설지 않은 '퐁 네프'는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새로운 다리(퐁:다리  네프:새로운)'란다.

하지만 '새로운 다리'란  이름과는 달리 이제는 흐르는 세월 탓에 세느강의 현존하는 수 많은 다리들 중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었다. 

 

이름이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그랬을까 은근히 좀 기대를 했었는데 실물을 보니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아 좀 실망이다.

글쎄... 나도 戀人과 함께였다면 느낌이 좀 달랐을까...ㅎㅎ 

 

 

 

  

이것이 이름도 유명한 퐁뇌프...??

명성에 비해 생각보다 참 평범해 보인다.

 

 

 

 

 

 

어쨋거나 나는 그 이름도 유명한 퐁네프를 건너고 있는거라구.

 

 

 

 

 

  

퐁 뇌프에는 센 강을 향해 반원형으로 돌출된 곳이 있는데

통행인들은 여기서 휴식을 취하거나 사랑을 속삭이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 곳은 과거에 노점상이 있던 자리로 어릿광대가 공연을 하거나 치과 의사가 영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래 사진 속의 남녀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일까, 아니면....

 

 

 

 

 

 

Pont (퐁)은 다리를 의미함

 

 

 

 

 

 

 

 

 

 

 

 

 

2006.07.27

 

 

 

 

*Ranee in Paris

 

 

 

  

상주교(퐁오상주, 환전교)를 건너는 중.

고대 로마 이래로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거리인  자크 거리가 보인다.

 

 

 

 

 

  

노트르담 다리와 시립 병원, 시립 병원 뒤로는 노트르담 대성당도 조금 보이고...

 

 

 

 

 

노트르담 다리

 

 

 

 

 

상공 재판소와 퐁오상주

 

 

 

 

 

 

 

상주교를 건너 세느 강변(메지스리 강변로)을 거니는 중.

이 거리엔 주로 그림을 파는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메지스리 강변로

 

 

 

 

 

세느 강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파리 시민들

 

 

 

 

 

 

 퐁오샹주에서 바라본 세느 강변과 퐁뇌프.

멀리 에펠탑도 작게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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