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여행 때 버스를 타고 돌아봤던 알파마 지구

이번엔 툭툭이를 타고 돌아봤다.







(진짜로 하고 싶은 건 그 유명한 28번 트램을 타고 돌아보는 거였지만

어쩌랴 이렇게 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지~)   







제로니무스 수도원 주변에서 출발~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 수단인 툭툭이를 이곳에서 타보게 되리라곤 생각치 못했었는데... 

리스본의 한 청년 창업가가 단순 교통 수단이 아니라

알파마의 가파른 언덕을 누비는 투어 상품으로 도입하며 툭툭이 붐이 일었단다.

버스나 트램이 못다니는 골목도 요리조리 잘 다니는 툭툭이~

덕분에 예전에 못보았던 골목도 보고

 세뇨라 두 몽테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1인당 60유로라는 적지 않은 옵션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넓은 테주 강(타호강, 타구스 강)을 가로지르는 4월 25일 다리를 스쳐 지나간다.

4월 25일 다리1966년에 완공된 다리로 처음에는 당시의 독재자 이름을 붙여 살라자교라고 불렀으나

독재자를 몰아낸 1974년 4월 25일의 포르투갈 혁명을 기념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미국의 건설회사가 시공한 다리라던데...그래서인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와 비슷하게 보이는 듯.

건너편인 알마다 지구 쪽으로 구세주 그리스도상(Santuario Nacional de Cristo Rei)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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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m의 기단 위에 세워진 28m의 구세주 그리스도상(Santuario Nacional de Cristo Rei)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브라질 리오데 자네이로에 있는 예수상을 연상케 한다.








인적이 드문 외딴 광장, S.Paulo 광장을 지나 분홍길을 따라 가는 중~







분홍길 ~ 시청~ 코메르시우 광장







시청 건물







아우구스타 거리가 테주강으로 돌출한 곳에 자리잡은 리스본 최대의 광장인 코메르시우 광장!!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노란 건물은 주요 관청들이며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된 마누엘 1세의 궁전 터에 있어서 궁전 광장으로 불린다고도 한다.







코메르시우 광장의 조르제 1세 기마상과 개선문!!

(2007년 사진임)






광장 중앙의 조르제 1세 기마상!!

(2007년 사진임)








코메르시우 광장~ 리스본 대성당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이구나 싶었던 리스본 대성당!!

12세기 그리스도교도가 이슬람교도로부터 리스본을 탈환한 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성당이란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주를 이루지만 디니스왕이 건조한 고딕 양식의 회랑과 대지진 후에 다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제단

여러 양식이 섞여 오랜 역사의 변천을 나타내고 있다.

(리스본을 폐허로 만들었던 1755년 대지진 때에도 파괴되지 않은 건물임)  




리스본 대성당 ~ 산타루치아 전망대




툭툭이를 타고 산타루치아 전망대를 지나고 있다.
잠시나마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했으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 
세뇨라 두 몽테 전망대에서 보는 뷰와는 다른 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지나쳐야 함이 아쉽다.






산타루치아 전망대는 지나쳤지만 툭툭이를 타고 가며 보는 이 풍경도 멋진 것 같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동상은 리스본의 수호성인인 비센테 동상~








 산타루치아 전망대에서 보면 이런 뷰가 보였을테지.







눈깜짝할새 지나치며 바라본 국립 팡테온~

오렌지색 지붕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백색 돔의 팡테온은 리스본에서도 뛰어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본래는 산타 엥그리시아 성당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위인들의 묘를 안치하는 팡테온이 되었다고 한다.








리스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외벽을 타일로 장식한 건물~

빨래줄에 걸린 빨래 때문인지 정겨움과 향수가 느껴진다.






Miradouro da Senhora do Monte

'성모의 언덕' 위에 위치한  세뇨라 두 몽테 전망대에 도착했다.

높이로는 리스본 상위 1% 전망대라 하는데 저질 체력의 여행자는 오르기 힘든 가파른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멋진 뷰를 가지고 있음에도 몇몇의 다른 전망대들보다 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라사 전망대는 좀 더 잘 알려진 전망대인 듯. 






세뇨라 두 몽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조망 덕에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상 조르제 성이 있는 언덕이 앞쪽으로 보이고,







테주 강의 4월 25일 다리도 보이고.






상 조르제 성을 배경으로 한 컷 남겨본다.

파노라마 사진도 남겼어야 했는데...







다른 전망대처럼 노천 카페는 없지만 소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 괜찮아 보인다.








빡빡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우리에겐 비록 그런 쉼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전망대 위 작은 성당 앞쪽으로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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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옆 건물과 골목엔 그래피티가 가득하다.







리스본의 다른 쪽 모습을 배경으로 찰칵~  







1755년의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된 도시라

유럽하면 떠오르는 중세풍의 느낌은 다소 덜한 아쉬움을 주지만

그래도 오렌지빛 지붕과 파스텔톤의 건물이 주는 느낌은 충분이 이국적이다.   







이제 전망대를 뒤로 하고 다시 내려가기 위해 툭툭이에 승차했다.







좁은 골목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신나게 덜컹덜컹~








자유여행객이라면 아마도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다시 하차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내리지 않고 점심식사가 예약되어 있는 신시가지의 레스토랑까지 툭툭이로 이동~








피게이라 광장을 지나고,







로시우 광장(페드로 4세 광장)의 마리아 2세 국립극장 앞을 지난다.







12년 전 여행 때는 로시우 광장에서 한동안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사진도 찍고 했었는데

이번엔 툭툭이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국립극장 반대편의 로시우 광장 쪽으론 눈길도 주지 못했었나보다.








페드로 4세 광장이라 불리기도 하고 로시우(호시우) 광장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곳은

시내에서 가장 많은 버스와 트램이 지나는 곳이고

주변에 카페와 시장이 있어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광장 중앙 커다란 기둥 위엔 브라질 최초의 황제가 된 페드로 4세 동상이 있고,

동상의 북쪽과 남쪽엔 바로크풍의 커다란 분수대가 각각 자리하고 있으며

물결치는 파도 모양의 자갈 바닥 인상적인데

이는 대서양의 물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다를 통하여 세계로 나갔던 이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로시우 광장 주변의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2007년에 찍은 사진임)






리스본 데스티네이션 호스텔을 지나자,







1640년 스페인의 60년 통치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독립광장(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포르투갈 독립운동 중에 사망한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하단의 동상은 승리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광장 뒤로 플라타너스가 우거져 터널을 이룬 리베르다드 대로가 뻗어있다.







독립광장(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 ~ 리베르다드 대로 ~ 폼발광장







리베르다드 대로 끝에 폼발광장폼발 후작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폼발 후작1755년의 리스본 대지진으로 황폐화된 도시의 재건을 맡아

도시중심을 현대적 격자 구획으로 바꾸고 리스본을 최고의 도시로 발전시킨 인물임.







신시가지 중심거리인 리베르다드 대로(자유대로) 북쪽 끝에 있는 에드아르두 7세 공원

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리스본을 방문한 기념으로 만들어진 공원으로 기학학적인 무늬의 화단이 인상적이다.

공원 정상에 서면 리스본 시내와 테주강이 한눈에 들어온다던데

예전 여행에서도 그렇고 이번 여행에서도 그렇고 스쳐지나가며 보았을 뿐 정상에 서보진 못했다.







툭툭이 투어를 마치고 신시가지에 있는 레스토랑 앞에서 하차~

툭툭이 기사님과의 기념샷 한 컷을 남기고,







맛난 점심 식사도 하고, 







두번째 만났던 리스본과도 작별을 고할 시간이 되었다.


☞ 다시 스페인 편으로 이어집니다.




로카곶에서 40km를 달려 리스본에 도착했다. 파티마나 로카곶처럼 리스본 역시 역시 두번째~

12년 전에 못 본 곳들만 쏙쏙 골라 볼 수 있다면야 두번째라 해도 좋았을텐데 

단체 여행 중이다 보니 이번에도 내가 리스본에서 본 것은 첫번째 여행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번째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리스본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벨렘지구이다.  

벨렘은 15~16세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양 제국으로 군림했던 포르투갈의 역사를 보여 주는 곳으로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해에 나섰던 곳이기도 하다. 







벨렘 지구의 볼거리인 벨렘탑제로니모스 수도원발견의 기념비~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될만큼 시원스레 넓은 테주 강 (타구스 강)과

대항해 시대가 남긴 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벨렘탑이 눈에 들어온다.







벨렘탑은 마누엘 1세의 명에 의해

1512~1521년에 걸쳐 프란시스쿠 데 아후다가 지은 마누엘 양식 우아한 탑으로 

당시 인도나 브라질 등으로 떠나는 배들의 통관 수속 하던 곳이다.




[마누엘 양식]

포르투갈 왕 마누엘 1세(재위 1495~1521) 통치기에 행해진 건축양식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에서 영향을 받아 이를 재해석한 포르투갈의 대표 건축 양식

입구나 창의 주위, 원주 등에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

바탈랴의 수도원성당, 토마르, 벨렘, 리스본의 수도원이 대표적인 마누엘 양식의 건축물임








(대항해 시대에는 해외에서 돌아온 배를 왕이 이 곳 테라스에서 알현 했다고도 함)







마치 드레스를 입고 강가에 서있는 여인처럼 보인다 하여

'테주강의 귀부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우는데

고상한 별명과는 달리 벨렘탑이 맡은 주요 배역은 요새였으며

1층은 감옥, 2층은 포대, 3층은 왕의 거실이자 망루고 쓰였었다고 한다.







19세기 이후 요새로서의 역할이 점점 퇴색되면서

세관, 우체국, 등대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다행이 198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제로니무스 수도원 다음가는 벨렘의 대표 명소가 되었다.







12년 전 여행 땐 내부 관람도 했었는데

이번엔 시간이 부족해서였는지, 입장 시각을 못맞춰서였는지

아무튼 내부는 들어가 보질 못했다.







벨렝탑을 뒤로 하고 발견의 기념비 쪽으로~

(발견 기념비 뒤쪽으로 보이는 다리는 4월 25일 다리임)







발견의 기념비는 1960년, 항해왕 엔리케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로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항해를 떠난 바로 그 자리에 그가 타고 떠난 카라벨선을 본 딴 모양으로 만들어 세워졌다.

  






바다를 향해 돌진 하는 듯한 모양의 뱃머리 선두에는 항해왕 엔리케가 서있고 

뒤를 이어 바스쿠 다 가마(인도 항로 개척),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브라질 발견), 페르난드 마젤란(마젤란 해협 발견),

바르톨로뮤 디아스(희망봉 발견) 등의 탐험가와  시인 루이스 카몽이스, 지도 제작자 페드루 누네스 등이 따르고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







리스본에서 가장 훌륭한 역사 유적 중 하나인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고딕,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 디자인을 병합한 건축 양식인 마누엘 양식의 걸작으로

바스쿠 다 가마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마누엘 1세의 명에 따라 세워진 수도원이다.







(마누엘 양식의 특징인 섬세하고 풍부하고 화려한 건축 장식)

 





두 명의 포르투갈 왕, 마누엘과 조앙 3세, 그리고 바스쿠 다 가마가 수도원 부속 성당에 묻혀 있으며

 20세기의 시인 페르난두 피소앙이 회랑의 아케이드 중 하나에 묻혀 있다고 한다.

 







1755년의 리스본 대지진도 견뎌낸 벨렘탑과 제로니모스 수도원

대항해 시대의 영화를 후세에 전하는 포르투갈의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1983년, 제로니무스 수도원 또한 벨렘탑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

[2018-12-16]



파티마를 떠나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로카곶(호카곶, 카보 다 로카, 까보 다 로까)으로~









이른 아침, S자 곡선을 그리며 산 길을 오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숲이며, 바다가 상쾌함을 더하는 아침~  








빨간 등대 앞에 버스가 멈추어 섰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유럽에서도 손꼽을 만한 역사를 가진 오래된 등대~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등대라고 함)







신항로를 개척하기 전, 지구가 둥근 모양을하고 있다고 생각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이곳은 지구의 끝으로 여겨졌던 곳일게다. 








십자가탑으로 올라가 본다. 







바다(대서양)를 감상하는 사람들~ 

수없이 바라봤을 바다지만 대륙의 끝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저마다에게 뭔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일제히 시선이 향하는 곳~







그곳엔 포르투갈 시인인 카몽이스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오래전 나만의 여행 흔적을 남겼던 곳에서 다시 한 번 딸과 함께 한 시간의 흔적을 남겨본다.







믿어지지 않는 12년이란 시간~

힘들고 고될 땐 길다고만 느껴졌던 시간인데 

지나고  되돌아 보면 언제나 마법을 부린 듯 후딱 지나버린 시간이 되어있다.





마법에 걸린 듯한 시계는 가속이 붙은듯 점점 더 빨리 도는 것 같은데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의 느낌도 예전과 다를게 없는 듯.








뺨을 차갑게 스치고

머리카락 한올 한올 사이로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이

머리를 맑게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지점이기도 한 의미 가득한 이 곳~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많은 시간의 여정이 남아 있다.




스페인 세고비아를 떠나 국경 넘어 포르투갈 파티마로~





파티마는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이지만

세계 3대 성모 발현지 중 하나여서 매년 400만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이죠.

(나머지 두 곳은 프랑스의 루르드와 멕시코의 과달루페라고 함)





도착하고 보니 날이 저물어서 주위가 깜깜~

그나마 우리가 묵을 호텔에서 파티마 대성당이 걸어갈 정도의 거리에 있어 다행이었어요.





호텔에서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파티마 대성당으로 향하는 우리들!!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으니 파티마 대성당이 나타났습니다.





<파노라마로 담아본 파티마 대성당>





<파티마 대성당 구조>





호텔에서부터 걸어오는 동안은 괜찮았는데

아침부터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던 비가 파티마 대성당에 들어서니 다시 부슬부슬~

12년 전에 왔을 땐 날씨도 화창하고 낮에 와서 사진 찍기가 좋았는데...ㅠㅠ

그나마 퍼붓는 비가 아닌게 다행이었죠.





정면에 보이는 것이 파티마 로사리오의 성모님 대성당(Basillica of our lady Rosary, Fatima)이고

왼편의 작은 건물이 원래의 성모님 발현 경당(Chapel of the Apparitions)이 있는 소성당이예요.





<세 명의 양 치는 어린이들이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로사리오 바실리카>



[파티마의 기적]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파티마라는 지역에서 양을 치던 세 명의 어린 목동(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들 앞에 성모님이 발현함

성모님은 목동들에게 5개월 동안 매월 13일에 나타나 신이 뜻을 전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닥쳐올 미래에 대해 세 가지 예언을 함

아이들이 성모를 만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파티마에 몰려오기 시작하자 지방 행정관은 그것을 정치적 선동이라고 여겨 루치아 일행을 감금했고, 성모가 전해줬다는 예언의 내용을 캐물음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경우 끓는 기름 가마에 집어넣겠다는 협박까지 당했지만 아이들은 성모에게서 전해들은 예언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음

려난 루치아 일행에게 성모는 다시 나타나 모든 이들이 신의 말씀을 믿도록 10월 13일 정오에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 들판에서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함

 루치아 일행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10월 13일 코바 들판에 7만여 명의 군중이 모임

10월 13일 파티마의 코바 들판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증언에 따르면 비가 그치면서 구름이 걷히자 태양이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고, 어떤 이들은 비에 젖었던 지면이 순식간에 말라버렸다고 증언했으며 구름 사이로 성인(聖人)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음 

레이리아의 주교는 파티마에서 일어난 이 성모 발현 사건을 조사해 그것이 허황된 거짓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림

1930년 10월 13일에 로마 교황청은 파티마의 기적을 공인했고, 1953년엔 파티마 대성당을 세워 이 사건을 기념함

성모의 예언을 들었던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얼마 후 스페인 독감에 걸려 각각 1919년과 1920년에 사망했고 살아남은 루치아는 수녀가 됨

루치아는 성모에게서 전해들은 세 가지 예언을 문서로 작성해 교황청에 넘겼고, 그 문서는 오직 교황만이 열람할 수 있도록 밀봉되어 일반인들에겐 공개되지 않음 

루치아가 교황청에 전달한 파티마의 제1예언과 제2예언은 1941년 교황청에 의해 공개되었고, 제3예언은 이후로도 공개되지 않아 인류의 종말에 대한 예언이라는 추측이 퍼지면서 많은 종말론자들을 양산함

루치아 수녀는 예언의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교황청은 83년 동안 제3예언을 비밀에 부치다 결국 2000년 5월 13일,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방문해 루치아 수녀와 면담을 가진 후 제3예언의 내용을 일반인에게 공개함

▶공개된 제3예언의 내용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엄청난 비밀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1981년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어났던 요한 바오로 2세 저격 사건에 대한 예고가 제 3예언이었다고 발표함

사람들은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교황청이 비밀에 부쳐온 파티마 제3예언이 지구 멸망이나 인류사에 기록될만한 중대한 사건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실망했고, 교황청이 진짜 파티마 예언을 숨긴 채 가짜 예언을 공개한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함

루치아 수녀는 그 후로도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여러 차례 만났다고 고백했으며 2005년 2월 17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함






<성모의 발현을 목격한 세 명의 어린 목동>





마리아의 발현 기적을 본 세 사람이 묻혀 있는 이 바실리카는

1928년 5월 13일에 건축이 시작되어  

1954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바실리카라는 칭호를 받으며 축성되었어요.





건물 중앙에는 65m 높이의 종탑이 있으며,





이 종탑 꼭대기 십자가 아래에는 성모님께 수여된 천상 모후 관이 빛나고 있죠. 





대성당의 좌우 양쪽에는 회랑이 있는데 이 회랑은 수녀원과 병원이 포함된 건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회랑 안쪽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답니다.







<회랑>





<회랑 안쪽의 십자가의 길 14처 중 일부> 





<성모 발현 소성당>





소성당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가운데 흰색 작은 건물이 원래의 성모님 발현 경당이예요.

성모님 발현 경당은 성모님의 요구에 부응하여 루치아가 기억하고 있는 성모님이 발현하신 자리에 세워진 것이며

성모님이 발현하신 정확한 위치는 기둥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원래는 이곳에 떡갈나무가 있었다고 해요.

루치아 수녀의 자서전에 의하면 이 떡갈나무는 순례자들이 가지를 하나, 둘 꺽어가는 바람에 결국 생존하지 못했나 보더라구요.

그래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그 떡갈나무가 있던 자리는 성모상을 모셔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해요.





이곳에서의 공식적인 첫 미사는 1921년 10월 13일, 지역 주교에 의해 거행되었는데

1922년 3월 6일 카톨릭 교회 반대자의 폭탄에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가 1923년 1월 13일 복원되어 미사가 재개되었으며

1982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처음 방문하셨을 때 경당 외부 현관을 지금의 모습으로 넓게 확장했다고 하네요. 





<파티마 대성당 광장 가운데의 예수 성심상>





로사리오의 성모님 대성당(Basillica of our lady Rosary)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봤어요.

미사 중이라 자세히 둘러보지도 못하고 사진도 죄송스런 마음으로 한 컷만 간신히 찍었네요.ㅠㅠ

로사리오의 성모님 대성당성경의 주요 내용을 주제로 성상과 성화로 구성되어있는 일반적인 성당들과는 달리

제대화나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등이 파티마에서 일어났던 성모님과 세 목동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되어 있어요. 

앞쪽으로 갈 수가 없어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제대 좌측 옆엔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아친타 세 사람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네요. 






미사 중이기도 하고 시간상 오래 머물 여건도 되지 않아 다시 대성당 밖으로 나왔답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세 명의 어린 목동 중 일찍 세상을 떠난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 조각상>







현대적 감각의 아기 예수님 구유네요.

하늘엔 천사가 있고, 구유 뒤에는 머리만 보이는 말과 소가 각각 한마리씩 있으며

 가운데엔 아기 예수님이,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엔 각각 성모님과 지팡이를 짚고 있는 요셉 성인의 모습이랍니다.

예전엔 낮에 와서 전등이 켜진 모습을 보지 못했었는데

밤에 오니 이런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삼위일체 대성당, 성 삼위 성당>





삼위일체 대성당은 파티마의 기적 9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에 봉헌된 성당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초석을 기증했다고 하네요.

이 돌은 베드로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성 베드로 성당이 건설될 때 나온 대리석 조각이라는군요.





삼위일체 대성당(성 삼위 성당) 앞엔 로사리오의 성모님 대성당(Basillica of our lady Rosary)을 향해

왼손을 가슴에 얹어 경의 표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동상이 있어요.

1982년, 1991년, 2001년 이렇게 세 차례 포르투갈을 방문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괴한에게 총격을 받은지 1년 후인 1982년 5월 13일, 이 곳을 방문하여 그 총탄을 파티마 성모님께 봉헌하였고

 봉헌된 총탄은 성모님의 천상 모후의 왕관 속에 끼워졌다고 합니다.





성 삼위 성당 앞, 높은 십자가(High Cross)는 조각가 로버트 샤드(Robert Schad)의 작품으로 1951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해요.  






광장에는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시작하여 성모님 발현 소성당 앞으로 이어지는 흰 대리석이 깔려 있는 길이 있어요.

고난의 길(속죄의 길, 참회의 길)이라 부르는 길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기도하며 성모님 발현 소성당까지 무릎으로 걸어가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요.

예전에 방문했을 때도 무릎으로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긴 했지만 ,이렇게 비오는 늦은 밤에도 그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네요.





삼위일체 대성당(성 삼위 성당)도 들어가 보면 좋았을테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건 여기까지라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발걸음을 돌려 호텔로 향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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