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서유럽,동유럽/┣ 파리(完結)

인상파의 전당 오르세 미술관

ⓡanee(라니) 2008. 3. 30. 08:42

 2006.07.27

 

 

 

Ranee in Paris

 -오르세 미술관-

 

  

몽마르뜨에서 그림까지 그리고 나니 오르세 미술관 관람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몽마르뜨 광장 쪽으로는 가보지도 못했는데.

시간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이 여행에서는 도무지 차 한 잔 마실 여유라는 것이 없다.

서둘러 오르세 미술관 도착해 보니 벌써 4시, 티켓 끊고 전시실 찾고 하다보면 폐관 시간까진 2시간도 남지 않았다. 이 넓은 미술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면 과연 몇 점의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을까. 아니 감상은 관두고라도 몇점의 작품이나 볼 수 있을 것인가.

순간적으로 7.5유로나 주고 입장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스쳐지나갔지만 여기까지 와서 안보고 돌아서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티켓을 끊었고, 유명한 작품만 골라보자는 생각으로 보물 찾기 하듯 뛰다시피하며 유명한 작품들을 찾아 나섰다.

미술관 안으로 입장하기 위해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살짝 자존심이 구겨질라고 했었다는 거.    

 

 

  

 

오르세 미술관 티켓 

 

 

 

  오르세 미술관 앞

 

 

 

오르세 미술관의 전경

 

 

 

 

 

오르세 미술관의 내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미술품의 보고, 센 강변의 아르누보 양식의 오르세 역을 개조해 19

86년에 개관한 미술관으로 1848~1914년까지의 회화, 조각, 사진, 공예 등을 3개 층에 전시하고 있다.

특히 마네, 모네, 드가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 진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어 입장객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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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셰 미술관엔 이런 작품이....

 

 

르세 미술관에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인상파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밀레, 고흐, 고갱, 르느와르, 쿠르베(사실주의), 모네 등의 그림과 로댕의 조각들 등등...  

 

 

 

밀레 <만종>

하루의 일과를 끝낸 한 농부 부부가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삼종

기도를 드리고 있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일하며 가난하고 피곤한 삶을 감사하

는 이들 부부의 기도는 하나의 경건 자체를 나타낸다.그 자신은 결코 농부가 아

니었지만,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던 밀레는 순박한 농민의 이미지를 빌어 전

원의 순수함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였다. 

그는 노동을 하늘의 섭리로알고 묵묵히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통해 도시와 상

반되는 전원의 가치를 종교적 색채로 그려낸 것이다.이 작품은 근대화를 거치면

서 전원 생활을 그리는 세계 각국의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밀레 <이삭줍기> 

 

 

 

 

 

 

고흐 <오베르 교회>

 

 반 고흐의 예술 한마디로 말하기는 무리다. 이 화가의 개성은 복잡하고 일반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짧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11890년 6월에  오벨 슬 오와이즈에서 제작되었다. 예술가가 고뇌한 최후의 시기에 속한 작품이다. 반 고호는 사실 이 작은 촌락으로 도피했었다. 여기는 이미 세잔느나 피사로가 이전에 체재한 곳으로 산 레미의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후, 같은 해 5월에 여기에 왔다. 오벨에서는 극히  짧은 기간 평정을 유지했지만 곧 환각의 청랑함과 실의의 발작이 번갈아 계속되고 그리고는 광기가 되었다. 자매 월에게 쓴 "마을 교회의 큰 그림을 그렸다. 구성은 교회의 짙은 보라빛, 하늘은 짙은 청색과 코발트 청색, 스탠드글라스의 모양을 군청, 지붕은 자색이고  일부는 오랜지색 ... " 그러나 반 고호는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아니 그릴 수 없었다. 극적인 감각, 폭력적인 광기는 그림도구를 농밀하게 두텁게, 뒤틀어서  마구 칠했다. 반 고호에게 하늘은 이미 온화한 하늘이 아니고 맑았지만 그러나 어두운 음기 없는 입장을 나타내고 긴창과 같은 줄기상나무가 뒤틀려서 불꽃과 같이 태양을 마치 작열하는 강처럼  나타내고 있다. 칠해진 그의 그림을 결국 그의 혼을 나타내고 있다. 반 고호는 고뇌의 중하와 남자의 낙담으로 모든 것을 뒤틀어진 변모로 해버렸다.

 

출처 : http://www.hakane.com/museum/orsay/orsay08.htm

 

 

 

고흐 <닥터 가셰의 초상>

 

 

 

 

 

고흐 <파란 자화상>

 

 

 

 

고흐 <아를의 여인>

 

 

 

 

 

 

 

 

 

 

 

 

 

 

 

 

 

 

 

 

  

  

고갱 <아레아레아, 기쁨>

 

 

 

고갱 <타이티의 여인> 

고갱의 예술은 시민 생활에서 도피하여 생환이 보다 원시적인,보다 사실적으로, 좌나 성실한 새로운 세계를 찾아서 기 묘함조차 있다. 시민에서 결별하고 가족, 자식들, 일을 버리고, 영광도 부도 거절했다. 이것은 잘 알려진 고갱의 매력적인 생활이다. 해안의 두사람의 여인 그림은 1891년에 그리고 그 얼마 후 고갱은 실제로 타이티에 도착했다. 이 체재 동안(1893년에 출발하여1895년 죽을 때까지 ) 원시적 인 미술을 발표했다. 형태는 힘있고 견고한 평면적이고 자연의 야생적인 색채이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성실함을 캔버스 위에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마오리의 예술을 복사한 것은 아니었다. 마오리를 농해 그 개인의 일이고 마음 속의 시정의 변모이다. 만약 고쟁이 원시생활을 했다변 이미 그것은 원시가 아닐 것이다. 그의 문제는 새로운 인간 문제이고 시민생활에서 도망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농해 순수한 세계의 형태를 생각해 재발견된 무구의 자연 속에 보다 고도의 종교적인 감각이 있다.

 

출처:  http://www.hakane.com/museum/orsay/orsay07.htm

 

 

 

 

슬러 <서커스>(왼쪽)

 

슬러는 인상파 회화의 중요한 대표자의 한사람이다. 광학 또는 물리차이 발전한 시대에 예술도 또 과학적으로 고안된 결과로서 독특한 수법없이 이뤄졌다. 의식적으로 두개의 색은 인접 시켜서 각각이 다른 색을 영향 끼치는(사갈의 표현에 의한 것이다. ) 슬러는 점화법 또는 점 묘법이라 불리는 테크닉을 창조했다. 이색의 점에 의해 캔버스를 덮어 매우 가벼운 느낌과 빛이 빛나는 효과적 표현을 하고있다. 이 그림은  1890년의 독립 살롱에 출품되었다. 전람회 개최 중 3월에 슬러는 불의로 죽어버리고 색의 디자인은 평면에 불완전한 채로 남았다. 보통 예술가의 기술은 고도의 결과를 쫓아나아간다. 미진한 황금 입자속에 침투한 딱딱한 마네킹 인형과 같은 인체가 플래쉬의 빛속에 고정되어 있다.

 

출처: http://www.hakane.com/museum/orsay/orsay05.htm

 

 

 

마네 <피리부는 소년> 

 

 

 

 

  

 

 

마네 <올랭피아> (위쪽 누드화)

 

 "그래 난 창녀다. 그게 도대체 뭐가 어쨋단 말이야?

  마네(1832~83)의 <올랭피아>는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다. 1863년 제2제정기의 졸부 취향을 대변하는 캬바넬의 <비너스의 탄생>과 나란히 그 해의 대표적 누드상으로 제작된 <올랭피아>. 인상파의 앞길을 밝힌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당시 비평가와 일반인들을 엄청나게 격분시켰다. 창녀를, 그것도 거만하게 관객을 쏘아보는 현실의 창녀를 버젓이 그려놓다니! "지나는 사람마다 '자기의 돌'을 집어서 그녀의 얼굴에 집어던졌다"고 신문이 쓸 만큼 <올랭피아>가 초래한 스캔들은 대단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위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나 당시의 분노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누드란 모름지기 비너스나 신화속의 여인의 고결한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 그려지는 것인데,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현실의 모모한 창녀가 그려졌다? 오늘날 캬바넬의 <비너스의 탄생>과 마네의 <올랭피아>를 나란히 놓고 보면 사실 여인 누드를 그렸다는 점에서 두 그림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너스의 탄생>이 더 에로틱한 포즈를 취하고 있고 당시 부르주아의 천박한 취향을 반영하고 있어 오히려 더 진짜 퇴폐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때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비너스의 탄생>을 자랑스럽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올랭피아>는 혹독한 욕설에 치여 마네가 죽을때까지 그의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사회의 위선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이 '창녀 그림'은 그 어떤 살롱파 그림보다도 순결해 보인다.
 
  그림을 보면, 올랭피아는 길게 가로누워 있고 오른쪽 코너에 흑인 여성과 검정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흑백 대조가 무척 강한 그림이다. 올랭피아의 살색과 침대 시트는 무척이나 밝고 환한데, 배경이 어두컴컴하다. 흑인 여성과 검정 고양이가 등장한 것도 그 흑백 대조를 돕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강한 대비를 조장한 것은 당연히 흰 색의 부각을 의도한 것이다. 앞서 공쿠르 형제의 밝고 자신감에 찬 시대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 희열에 창녀가 함께 한 것은 그만큼 시대와 현실에 대해 정직하고자 하는 마네의 근대적 작가정신 때문이었다. 가면을 벗자, 밝고 환한 부르주아지 세계의 뒤안은 그 어느 곳보다 그늘지고 어둡다! - 그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물론 그것을 개혁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있는대로 보자는 것이었다). '현실 직시' 문제로 빚어진 <올랭피아> 스캔들은 기실 그 뒤 인상파 작가들이 계속 겪게 될 숱한 사회적 몰이해와 냉대의 전조였다.
 
  - 이주헌,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중에서
 
 
 
 
 

 

 

 

 

 

 

로댕 <지옥의 문>

 

 

 

▼ 생각하는 사람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그는 꿈을 꾼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몽상가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로댕이 밝힌 '생각하는 사람'의 의미다. 가장 대중적인 로댕의 작품으로 통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위에 �아, 현제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들을 관조하고 있다.

 

 

 

▼ 아담(혹은 세 망령)

 

'지옥의 문'중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조각 '세망령'을 상징하는 '아담'.

지옥입구를 지키는 망령을 뜻한다.

 

 

 

▼ 파올로와 프란체스카(혹은 입맞춤)

 

단테 '신곡' 지옥편 5곡에 나오는 육욕의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13세기, 젊고 잘 생긴 시동생 파올로에 반한 프란체스카의 불륜 이야기를 묘사했다.'지옥의 문'에는 당초 '입맞춤' 부분이 있었으나, 로댕이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떼어냈다고 전해진다.


 

 

▼ 순교자

 

이 작품은 1889년 처음 전시된 이래 수많은 수정을 거쳤다. 순교자지만, 그 표정은 고통스럽다.
이는 로댕이 가진, 인간에 대한 진실 추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들


13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간 전쟁에서 적에 생포된 우골리노. 그는 '기아의 탑'에 투옥되자, 배고파 죽은 자신의 아들 시신을 먹고 '마지막 생존자'가 됐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다.
로댕은 이 불륜의 이야기를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의 얼굴조각으로 표현했다.


 

 

 

▼ 허무한 사랑


 

단테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이야기. 육욕죄를 지고 형벌을 받은 남자를 등에 업고 도주하는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 여인의 등은 깊이 파였으며, 남자의 토르소는 평평하고 다리가 늘어져 있다. 이중 젊은 남자의 얼굴을 로댕은 '슬픔의 머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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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관 시간에 쫓겨 눈도장만 찍다시피 하며 그림을 보고 오르셰미술관을 나왔다.

미술관 앞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는걸까...생각보다 사람이 꽤 많다.

 

 

 

 

미술관 맞은편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거리의 악사가 눈에 들어 온다.

지쳐서 그러는 건지 자세가 좀 ...

 

 

 

 

 

 

 

 

 

 

세느강 저 편으로 루브르박물관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