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리스. 터키/┗ 터키(完結)

(이스탄불) 미마르 시난의 슐레마니예 자미

ⓡanee(라니) 2009. 1. 21. 11:19

 

2008년 8월 12일 (화)

 

Ranee in Istanbul

-슐레마니예 사원- 

 

 

 

 

이제껏 멀리서만 수차례 올려다 보며 아름답다고 느꼈던 슐레마니예 사원을 우리는 쉽지 않게 찾아내었고 드디어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사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처음으로 맞아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묘비들. 이 사원 안에 세기의 사랑을 했다는 술탄 슐레이만과

휴렘의 묘소가 있다는 것은 책자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입구부터 무덤들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바다.

무덤들을 본김에 우리는 슐레마니예 사원의 내부를 보는 것보다 먼저 슐레이만과 휴렘의 묘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슐레마니예 사원 뒷편에 있는 이것이 오스만 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술탄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술탄 슐레이만과 노예

던 그의 아내 휴렘의 묘소다. 죽어서도 휴렘과 함께 있고 싶었던 슐레이만의 유언에 의해 미마르 시난이 만든 것으로 오스만

터키의 묘소는 원래 단순한 다각형 본체에 한 개의 돔이 얹혀 있는 형태였으나 슐레이만과 휴렘의 묘소는 팔각형 본체에 

잡한 구조로 돔이 배치되어 있고 아케이드로 둘러싸여 있다. 건축 전문가에 따르면 이라크 사막에 이와 비슷한 건축 양식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미마르 시난이 예니체리 군단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많은 건축물을 보았기에 외국의 건축

양식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고 한다.       

 

 

 

 술탄 슐레이만의 묘소

술탄 슐레이만은 터키인이 주저하지 않고 가장 위대한 술탄으로 꼽는다는 인물로 오스만 제국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으로 만든 인물이며 오스만 제국의 입법 체계를 탄생시킨 인물이기도 하단다. 오스만 제국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세계사에 당당히 올려

놓았으며 육해상의 실크로드를 완전히 장악하고 유럽인들에게 오스만을 공포와 경외의 대상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한 이런 대단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여인이 바로 휴렘이다. 

 

 휴렘의 묘소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문화적, 정치적, 학문적으로도 완벽했던 그(술탄 슐레이만)가 사랑하게 된 여인은 노예로

끌려온 여인 알렉산드리아 리즈오스카였다. (하렘에 들어 온 이후 록셀란 휴렘이란 이름으로 불린...)  슐레이만은 휴렘만을 사랑했고 하렘

내 다른 여인들에게는 일체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슐레이만이 휴렘을 만나기 전 그의 아들을 잉태했던 마히데브란을 제외하고는

하렘에서 슐레이만의 얼굴조차 제대로 본 여인이 없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휴렘에 대한 슐레이만의 일편단심을 우려한 술탄의 어머니가

그에게 다른 여인들을 직접 데려다 주기까지 했지만 그 또한 모두 허사였다고.

오스만의 술탄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대리자였고 현실적으로는 제국의 후계를 튼튼히 하고 내부 권력 다툼을 막기 위해 아내를 들일 수 없었으나 

 슐레이만은 휴렘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오스만의 전통을 깨고 휴렘과 결혼하여 오스만 최초의 결혼한 술탄이 되었고, 그녀에 대한 사랑때문에

후계자 문제에 그녀의 개입을 허용한 것이 결국 왕위 계승권 다툼의 시작이 되어 그의 빛나는 업적에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다.

  

 

  

 

 

슐레이만과 휴렘의 무덤을 둘러 보고 슐레마니예 사원의 내부를 보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슐레마니예 사원은 대대

적인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미나레만 보수중인 줄 알았는데.... 

 

 

슐레마니예 사원은 오스만 제국 최전성기를 쌓은 슐레이만1세의 모스크로 슐레이만 즉위 30년째인 1550년에 착공하여 7년

후인 1557년에 완공된 사원이다. 슐레이만은 터키가 낳은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에게 최고의 기술을 사용해 지금까지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건축물을 지어보라 명령했는데 예술가로서 가장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제국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국가적

대사업을 의뢰받은 미마르 시난은 설계도도 없이  이슬람 최초의 완벽한 돔을 가진 이 건축물을 만들어 그의 명성을 한층 드높

였다고 한다.또한 이 사원은 수학자이기도 했던 미마르 시난에 의해 최고의 耐震  설계로 되어 현재까지 한 번지진으로

인한 보수 공사를 거치지 않았다고.

슐레마니예 사원엔 다양한 부속 시설이 있다. 여섯 개의 학교, 연구소 병원, 극빈소, 무료 급식소, 상인들의 숙소, 상점 등이 그

것이다.

슐레마니예 사원의 4개의 미나레는 이스탄불이 수도로 정해진 이래 슐레이만 대제가 4번째 군주임을 나타내며,  미나레의 10

개의 셰레프(발코니)는 오스만 이래 10번째 군주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골든혼(금각만)에서 본 슐레마니예 사원

슐레마니예 사원은 골든혼이 내려다 보이는 구시가의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현재도 그런 듯 보이긴 하

지만 당시 길도 그다지 넓지 않고 서민적인 분위기가 농후하게 남아있는 곳이었다.슐레이만 대제는 어째서 이런 곳에다 사

원 지으라고 한 것일까.  아마도 슐레이만 대제가 맘만 먹었다면 톱카프 궁전과 아야 소피아 가까운 곳에 모스크를 짓는 것

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곳이 아닌 이 지역을 선택했다.  이유는 서민들이 땀 흘려 일하며 생활하는 저잣

거리와 가까운 곳을 고른 것이란다. 그래야 극빈원이나 무료 급식소, 무료 시술원 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테니까.

아무리 봐도 그는 참 괜찮은 술탄이었던 듯 하다.    

 

  미마르 시난

미마르 시난은 오스만의 전성기였던 슐레이만 대제의 시기에 등장하여 오스만 건축의 중흥을 이끈 인물이다.  99세로 그의

생애를 마치기까지, 슐레이만을 포함한 3명의 술탄을 섬기면서 94개의 교회와 57개의 대학, 35개의 궁전과 22개의 묘소,

17개의 무료 급식소 등 약 370여 개의 크고 작은 건축물을 직접 설계하거나 지휘.감독하였다. 

 


 

 


비잔틴 양식의 돔 지붕과 이슬람 양식의 미나레, 페르시아풍의 내부 장식을 결합한 당대 최고의 건축물 슐레마니예 사원

 

 

  

 

 

현재 공사중이라 안타깝게도 볼 수는 없었지만 슐레마니예 사원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16세기 오리지널 수공예품으로 스테

인드 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햇빛은 돔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기하학적 식물 문양과 코란 문구를 응용

한 화려한 장식과 교차돼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공사중이라 사원의 내부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지만 이 곳에서 할례식을 하려는 소년을 보게 되었다. 할례는 이슬람교도 남자들에게 중요한 의식으로 현재는 의사가 담당하고 있다고.

멋진 의상을 입고 있는 게 기분이 좋은건지 계속해서 싱글벙글인 소년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고맙게도 몇 번이나 포즈를 취해 주었다. 

 

 

 

 

 

슐레마니예 사원을 돌아보고 사원을 나선다.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는 옆문쯤에 해당되고 아마 이쪽이 정문에 해당되는 곳이었나 보다.

'처음에 이쪽으로 들어왔으면  묘비들 때문에 놀라는 일은 없었겠지.'

 

 

 

 

 

사원 앞에 늘어선 상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오늘의 점심은 햄버거와 콜라.

딸 아이 뒤쪽으로 수박을 먹는 여인들이 보이는데 정말 먹고 싶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거의 비어있는 지갑 때문에 순간순간 초라한 기분. ㅜㅜ 

 

 

 

 

차이잔 셑트라던가 터키 여행의 기념이 될만한 물건들을 팔던 가게 

 

 

 

 

 

 

이스탄불 대학에서 본 슐레마니예 사원

 

슐레마니예 사원을 나와 점심까지 해결한 우리가 다음 코스로 찾아간 곳은 슐레마니예 사원 근처에 있는 이스탄불 대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