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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정교한 조각의 아름다움, 반띠아이 쓰레이(반테아이 스레이)

ⓡanee(라니) 2011. 2. 26. 00:27

 

2011년 1월 12일 (수)

 

 

 

 

정교한 조각과 부조의 아름다움이 뛰어난 <반띠아이 쓰레이>

 

 

 

 

  <반띠아이 쓰레이>라젠드라만 2가 다스리던 시기인 10세기 후반에 제사의식을 담당하던 브라만 승려 야즈나바라하가

  가 세운 힌두교 사원으로 자야바르만 5세 때 완공 되었다.  

  사원의 이름은 성채라는 뜻의 반띠아이여인라는 뜻의 쓰레이가 합쳐진 말로 <여인들의 성채>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이 사원은 여자와는 무관하며 분홍빛 사암과 붉은 라테라이트석을 사용하여 사원 전체가 분홍빛 연꽃처럼 정교하고 여성적

  분위기의 부조로 온통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인이란 명칭이 쓰여진 듯 하다고 한다.

  힌두교 신화를 주제로 한 부조 장식은 앙코르 예술의 최고 작품으로 일컬어지며 앙코르의 보물이라고도 불린다.

  웅장함이나 신비함에 있어서는 <앙코르와트><바이온 사원>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교한 조각부조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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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goangkor.com.ne.kr/

 

 

 

 

수많은 앙코르의 사원들 중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반띠아이 쓰레이>의 주출입구인 동쪽 고푸라(탑이 있는 출입문)가 보인다. 제1 외벽에서부터 성소를 지나 서쪽 끝 고푸라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직사각형의 길다란 사원인 <반띠아이 쓰레이>는  두 겹의 외벽과 두 겹의 내벽으로 둘러져 있지만 제1외벽은 완전히 유실되어 현재 볼 수가 없다.  

 

 

 

 

1936년 제1 외벽의 동문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쓰레이의 원래 이름은 이스바라푸라(Isvaraputa)로 왕족 출신의 승려이자 쟈야바르만 5의 스승인 야즈나바라하가 건립했다고 한다. 왕이 주체가 되어 지은 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상당히 작고 높지도 않지만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사원에도 뒤지지 않는 출중한 모습의 사원이다. 

 

 

<반띠아이 쓰레이>를 보기 위해 첫번째 관문인 제1외벽의 동쪽문을 통과하는 중.

 

 

제1외벽에 난 동쪽 문의 동쪽 현관 상인방(문틀위)에는 번개와 홍수의 신이자 약한자의 수호신인 인드라(Indra)가 자신의 신성한 탈 것인 아이라바타(Airavata, 머리 셋 달린 코끼리)를 타고 있는 장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제1 외벽의 동쪽 고푸라 문을 들어서면 긴 보도(참배길)가 이어진다. 중앙에 큼직한 사각형의 돌들로 만들어진 도로가 있고 양쪽으로 32개의 링가들이 늘어서 있다. 보도 좌우로는 갤러리(회랑)가 길게 늘어서 있으며 그 중간엔 사암으로 지은 자그마한 탑문남북으로 나 있었다는데 그 문도 지금은 거의 유실된 상태다.

 

 

이제 두번째 관문이 될 제2외벽의 탑문을 지난다. 성소를 에워싼 제2 외은 붉은 라테라이트를 사용하여 만든 아주 나즈막한 담인데 현재는 대부분이 허물어진 상태다. 

 

 

 

 

제2 외벽과 탑문(사원 쪽에서 바라본 모습), 그리고 양옆으로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제ㅣ내과 탑문, 해자

제2 외벽동문을 통과하면 해자(연못)로 둘러싸인 나즈막한 붉은 라테라이트 내벽이 보이고 해자를 지나 내벽 동문을 들어서면 붉은 건물군이 나타난다사원 건물군이다.

 

 

 

 

제1내과 탑문 (사원 쪽에서 본 모습)

 

 

 

 

 

휴게소의 상인방

내벽 안쪽으로, 동쪽과 서쪽 탑문 좌우로 4개의 직사각형 건물이 있는데 이 곳은 참배객들의 휴게소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남쪽과 북쪽에 있는 두 개의 별관은 명상을 하는 용도로 지어졌다고 한다.

 

 

 

 

 

인도의 건축 양식을 상당 부분 혼합하여 지었으며 상인방의 부조 내용을 충실히 한 <반띠아이 쓰레이>

 

 

 

 

 

남쪽 장서각과 북쪽  장서각

크메르 건축물에서의 장서각은 실제로 책을 쌓아두는 곳이 아니라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상인방이나 벽에 신화의 내용을 부조로 새겨넣어 신화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장서각 건물 전체가 한 권의 책이라 할 수 있는데 <반띠아이쓰레이>장서각은 각각 힌두교의 2대 서사시인의 「라마야나」"「마하바라나」의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두 권의 책인 셈이라 할 수 있다

 

 

 

 

남쪽 장서각 동쪽문 상인방 부조

「라마야나」에 관한 내용을 표현한 장서각은 남쪽 장서각으로 위의 사진은 <카일라사 산 흔들기> 전설이 새겨져 있는 남쪽 장서각의 동쪽문 상인방의 모습이다.

 

 

 카일라사 산 뒤흔들기 전설
머리가 10개에 팔이 20개, 다리가 4개나 되는 스리랑카의 왕 라바나(Ravana)는 천하무적의 힘에 출중한 용모까지 겸비한 자로서 창조의 신 브라흐만의 숭배자였다. 그는 브라흐만의 총애를 받기 위해 만년동안 고행하고 천년마다 그의 머리를 한 개씩 떼어내 브라흐만에게 바치며 찬송하였는데 마지막 10번째 머리를 바치자 브라흐만이 "자신을 포함한 어떤 천상의 신이라도 그를 해치거나 죽이지 못한다"는 불사신의 권능을 내리게 되고 불사신이 된 라바나는 그 후 점점 교만해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라바나는 시바신의 거처하고 있는 신성한 카일라사 산에 들어가려 하다가 원숭이족의 수문장에게 저지를 당하게 되고 자존심이 상한 라바나가 격노하여 대들자 원숭이 수문장은 "언젠가 네 운명은 원숭이에 의해 파멸될 것이다"라는 저주를 내리게 된다. 분에 못이긴 라바나가 카일라사 산 밑둥을 잡고 마구 흔들자 시바신의 아내인 파르바티 여신이 겁에 질리게 되고 이데 화가 난 시바 신이 발가락으로 카일라사 산을 꾸욱 누르자 라바나는 산 밑에 깔려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놀란 라바나는 당장에 머리를 읖조리며 시바 신의 권능을 찬양하는 노래를 1천년동안 부르게 되고 시바 신은 그제서야 비로소 그를 풀어주게 된다.  하지만 감히 신에 대항하고 악행을 저지른 라바나는 라마왕자로 환생한 비슈누신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때 라마왕자를 도운 것이 원숭이족의 군대이며 라바나는 결국 원숭이 족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의 신화이다. 결국 예언은 실현되고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이야기.
「라마야나」는 힌두교인으로서 지켜야할 덕목이나 도리에 대해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로 이중 이 <카일라사 산 흔들기> 부분은 신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남쪽 장서각 서쪽문 상인방 부조

남쪽 장서각 서쪽문 상인방에는 시바 최초의 샥티(신의 아내)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원래 힌두교 3신은 아내가 없었는데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처녀 파르바티가 명상 중인 시바를 유혹하여 아내가 된 다음부터 신들이 아내를 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바 신과 최초의 샥티에 관한 이야기
시바가 그의 신성한 거처 카일라사 산(히말라야)에서 고요히 명상에 잠겨 있을 때 파르바티가 그를 유혹하려 들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자 사랑의 신 까마(Kama)에게 협조를 부탁한다. 까마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 꽃 모양의 사랑의 화살을 시바의 심장에 적중시키고 이로 인해 명상을 방해받은 시바는 화가 나서 가운데 눈(쉬바는 세 개의 눈을 갖고 있으며 이마에 난 눈은 사물을 꿰둟어보는 혜안이며 섬광을 발산하는 무기를 겸한다)으로 빛을 쏘아 까마를 태워죽인다. 이렇게 눈을 뜬 순간 시바는 아름다운 파르바티를 보고 사랑을 느껴 결혼하게 되고 코끼리 신 가네샤와 전쟁의 신 스칸다 그리고 사랑의 신 카마데바의 세 아들을 얻는다. 시바는 까마의 공을 인정하여 그의 생명을 되돌려 준다.

 

 

 

 

 

북쪽 장서각의 동쪽문 상인방 부조
「마하바라타」를 표현한 북쪽 장서각의  동쪽 상인방은 위쪽부터 하늘의 신이자 비의 신인 인드라(Indra)가 동물들로 가득한 숲에 신성한 비를 내리는 장면(평행으로 난 빗금)이 묘사되어 있다. 인드라는 구름과 바람(파도 무늬)에 둘러 쌓인 채 자신의 탈 것인 머리 셋 달린 영물 코끼리 아이라바타(Airavata)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으며 새들의 날개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 빗 속에서 물의 정령 나가(뱀)가 하늘로 향해 치솟고 있다. 아래쪽에는 아름다우면서도 평범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새겨져 있다. 동물들에게 둘러싸인 아기 크리쉬나와 형 발라라마(쟁기를 쥔 사람)가 숲 속에 내리는 비의 신선함을 음미하고 있는 장면이다.

 

 

 

 


북쪽 장서각의 서쪽문 상인방 부조

서쪽문에는 깜사 왕(Kamsa)의 궁으로 장면이 두 개의 장면으로 조각되어 있다. 하나는 성인이 된 크리쉬나가 깜사 왕의 머리채를 움켜 잡고 그를 옥좌에서 끌어내려 죽이는데 그 옆의 한 여인(크리쉬나의 생모)이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면서도 의아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크리쉬나와 형이 덩치 큰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이다. 각 코너에는 전차를 탄 전사들이 동물들에 둘러싸인 채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크리쉬나의 탄생 전설
우주 질서의 신 비쉬누는 불의를 처벌하기 위해 여러 화신으로 탄생하는데 그 여덟 번째 화신이 크리쉬나(Krishina)이다. 크리쉬나는 탄생 때부터 고난을 거듭한다.

마투라 왕국의 왕자 캄사는 아버지를 투옥하고 왕좌를 차지한다. 그의 여동생 데바키 공주(Devaki)는 바수데바(Vasudeva)라는 귀족과 결혼을 하게되는데 캄사 왕은 "데바키 공주가 낳을 여덟 번째 아들로 인해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값을 치루게 될 것이다"라는 불길한 예언을 듣는다. 불안해진 캄사 왕은 여동생에게 감시꾼을 붙히고 데바키가 아들을 낳을 때마다 죽여 버린다.
신들은 여덟 번째 아들이 태어나는 날 어둠을 일찍 불러와 파수꾼들을 잠재우고 폭풍우를 내리쳐 시야를 가린다. 그 사이 바수데바는 아기를 가로채어 야무나 강가의 시골에 사는 난디의 집으로 향했다. 신들은 그를 위해 야무나 강물을 갈라 길을 터주고 바수데바는 친구의 갓난 딸아이와 크리쉬나를 바꿔치기 해 궁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캄사 왕은 아기 탄생 소식에 서둘러 온다. 데바키는 여자애가 무슨 나쁜 짓을 하겠냐며 살려주길 애원하지만 캄사는 사정없이 돌로 아기를 쳐 죽이려하는 순간 아기가 떨어져 하늘로  솟구치고 신들이 거둔다. 하지만 아기가 바꿔짐을 안 캄사 왕은 푸트나라는 여인으로 하여금 젖에 독을 발라 생일이 같은 날 태어난 모든 아기를 죽이는데 아기 크리쉬나도 그녀의 젖을 빨았으나 외려 그녀가 사망하고 아기는 무사하자 양부모는 범상치 않음을 알게된다.


크리쉬나는 성인이 된 다음 탄생의 비밀을 알게되고 캄사 왕을 친 다음 외할아버지를 석방시키고 평화를 되찾는다. 이 전설은 크리쉬나를 통해 형제, 부부, 부자 간의 우애와 지켜야할 덕목을 얘기한다.

 

 

서쪽문은 열려있고 나머지는 가짜문 형식으로 새겨져 있으며 벽은 평범한 벽돌로 쌓아올려 상인방의 화려한 부조와 대조를 이룬다.

 

 

 

 

 

제2내벽 탑문과 상인방의 부조

 

 

 

 

 

 

중앙성소

두 장서각 사이에 있는 건물은 중앙성소이며 성소의 뒤쪽으로 세 개의 을 가진 사당이 연결되어 있다.

성소들은 겹띠를 가진 높지 않은 기단 위에 붉은 라테라이트 벽돌로 4단의 탑층을 쌓아올렸다. 성소 문은 동쪽으로 열려 있고 중앙 성소에는 시바 의 상징인 링가(Linga, 남근 모양의 돌)가 모셔져 있다.

 

 

 

세 개의 탑을 가진 사당 

중당성소 뒤쪽의 세 개의 탑을 가진 사당이다. 세 개의 사당 중 두 개는 시바 신에게 나머지 하나는 비슈누 에게 바쳐진 사당이라고 한다.

 

 

 

소 건물의 각 입구에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은 수문장들로 원숭이, 새, 사자 등의 각기 다른 짐승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은 존경심을 표하는 모습이라고 하며 이들 중 중앙성소 북쪽에 놓인 것만 진품이고 나머지는 모조품으로 진품은 국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았다 한다.  

    

 

 

 

훼손을 방지하고 도난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접근을 막고 있는 모습 

 

 

 

 

 

 

제2내벽의 서쪽 탑문들과 상인방 부조

힌두 신화 중 라마야나의 한 장면으로 왕위를 둘러싼 원숭이 왕국 수그리바 형제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부조이다.  

 

 원숭이 왕국 키슈킨타의 왕자인 수그리바는 형인 발리 왕자가 악마와 교전하다가 죽은 것으로 착각하여 동굴울 막고 귀환하여 아버지 사후 왕위에 올랐으나 죽지 않고 돌아온 발리 왕자는 동생인 수그리바가 왕위를 노려 자신을 고의로 죽이려고 했다고 오해하여 수그리바를 내쫓고 죽이려 한다. 부하들과 숲 속을 방황하던 수그리바는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 왕자를 만나 랑카왕 라바나에게 유괴된 그의 아내를 찾아주는 대신  형을 처단하고 왕좌를 되찾는다는 이야기.

 

 

 

 

 

 

<반띠아이 쓰레이>는 1914년 프랑스에 의해 발굴되었지만 너무나 울창한 밀림 속에 자리 잡고 있어 발굴 작업이 계속되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3년, 프랑스 인을 주축으로 한 유럽계 고고학 탐험팀이 쓰레이로 들어와 홍보석같은 사원의 상인방(문틀위)을 떼내어 도망치는 도굴사건이 발생했고 이러한 공식 탐험단의 몰상식한 행위가 프랑스 정부로 하여금 하루 빨리 발굴작업을 해댜겠다는 결정을 하게 하여  대대적인 발굴 작업 결과 <반띠아이 쓰레이>가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반따아이 쓰레이>의 복원에 도입된 아나스틸로시스 공법(Anastylosis)은 붕괴된 원래의 조각들을 모아 원형을 추정한 뒤 하나하나 끼워맞추는 기법으로 당시로서는 최신예 유적 재건축 기법이었는데 앙코르 유적 중에선 <반띠아이 쓰레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한다.

 

 

 

 

 

건축에 사용된 재료의 특성 때문인지 세밀한 부조 장식은 수많은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창건 당시의 본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시바 사당

 

 

 

 

 

테바다 상 

중앙사당의 북쪽 정면 오른쪽에 있는 테바다(여신)은 서유럽으로부터 <동양의 모나리자>로 극찬을 받았던 작품으로  문화부 장관이었으며 우리에겐 작가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앙코르 유적을 방문 했을 때 이 여신상에 반해 본국으로 가지고 들어가려다 붙잡힌 적이 있어 더욱 유명해진 작품이다.  (앙드레 말로에 의해 도굴되었던 테바다 상은 중앙 사당 북쪽에 있어서 사진으로 남기지 못함

 

 

 

성소탑 코너마다엔 섬세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의 여신들은 풍성한 주름의 단순한 옷차림에 땋은 머리 혹은 묶은 머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반띠아이 쓰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헤어 스타일이라고 하며 진주 장식의 허리 벨트와 팔과 발목의 장신구, 세공까지 한 목걸이는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반면 남신들은 위엄있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풍기는데 손에 창을 들거나 연꽃 또는 기타 상징물을 들고 서 있는 남신들의 옷차림은 훨씬 단순하며 머리는 뒤로 묶어 동그랗게 마무리했고  표정에는 위엄이 있다.

 

 

 

 

유적지가 놀이터인...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을 둘러 보고 나오는 길. 참배길을 지나는데 마침 주황빛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찍었으면 사원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규모면에서 압도하는 장엄함은 없지만 다른 사원들과 분명 차별화되고 신비롭기까지한 <반띠아이 쓰레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품고 이 곳을 떠나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