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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헝가리 근대사의 아픈 상처가 있고 부다페스트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에 오르다

ⓡanee(라니) 2017. 8. 9. 23:46



부다 왕궁을 떠나

헝가리의 몽마르트라 불리우는 겔레르트 언덕으로 향합니다.

헝가리 근대사의 아픈 상처도 있지만,

동시에 부다페스트의 시원한 조망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

10년 전, 시간이 너무 늦어 오르지 못한 탓에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기억되었던 바로 그곳으로 설렘을 가득 안고 갑니다.







겔레르트 언덕 중턱의 겔레르트 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난 밤엔 유람선에서, 이번엔 버스 안에서..

결국 저곳은 발걸음 해 보지 못하고 이렇게 바라보기만 할 뿐입니다.






[겔레르트 석상]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건축가 쉬트로블(Zsigmond Kisfaludy Strobl, 1884~1975)의 작품으로 높이가 4m에 이르며 종전 기념으로 1947년에 완공됨.

▶헝가리 최초의 순교자인 성 겔레르트는 본래 이탈리아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로 당시 베네치아에 있던 성 조르지오(St. Giorgio) 수도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로마 가톨릭 계의 거물이었다고 함.

헝가리의 초대왕이었던 이슈트반 1세의 아들 교육을 위해 초대됨.

▶이슈트반 1세와 함께 마쟈르인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려했으나, 1045년 기독교화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못이 박힌 둥근 통 속에 산채로 갇힌채 이 언덕에서 도나우 강까지 굴러 떨어져 순교함. (온몸에 못이 박혀 살점이 찢겨나가고 통은 도나우 강물 아래로 깊숙히 가라앉았다고 함)

▶원래는 케렌 언덕이란 이름이 있었으나 순교한 성 겔레르트를 기리기 위해 겔레르트 언덕이란 이름으로 개칭하였으며, 겔레르트 석상도 그가 통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했던 바로 그 언덕에 세워진 것임.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는 겔레르트 언덕의 정상부!!







궁금한 마음에 카메라로 당겨 미리보기를 하고...







얼마 후, 우리도 그곳에 합류하기 위해 

겔레르트 언덕 주차장에 내려서서 완만한 언덕길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겔레르트 언덕의 많은 사람들!!

이들 중 일부는 합스부르크와 소련 치하에서 겼었던 뼈아픈 상처를 되돌아보려는 마쟈르인의 후손들일 것이고,

또 다른 일부는 자유의 여신상 기단 뒷벽에 새겨진 소련군 병사의 이름을 어루만지려는 러시아인의 후손들일 수도 있을 것이며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는 부다페스트의 이름다운 전경을 즐기고픈 관광객들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에서 내려 첫번재 전망대부터 들렸어야 했는데

앞만 보고 전진하는 바람에 첫번째 전망대를 놓쳐 버렸네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덕을 조금 더 오르다 보면 조망 좋은 또다른 뷰 포인트가 있거든요.

첫번째 전망대는 내려오다 들려도 되구요.ㅎㅎ 







한동안 앞만 보고 오르고 있음을 깨달은 라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부다페스트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시대별로 정리되어 걸려 있는 

시타델라 성벽에 눈길을 줍니다.


'아하~부다페스트가 예전엔 이랬었구나.'





한동안 성벽 사진들에게로 가 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전진~

이번엔 작은 기념품 가게들 위쪽 성채에 남아 있는 선명한 포탄 자국들이 시선을 붙듭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이곳에서 소련의 공격에 최후의 방어전을 치뤘던 흔적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역사의 상처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요새라 함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방어 시설. 또는 그런 시설을 한 곳이지만

합스부르크제국이 1850년부터 1854년까지 만든 이 시타델라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요새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식민지였었고

이 시타델러의 기능은 오로지 페스트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던 독립운동 감시용 망루였던 것입니다.

1848년부터 2년간 계속된 헝가리인들의 독립전쟁과 그 이후에도 식을 줄 모르는 헝가리인들의 독립운동에

합스부르크 제국은 감시초소로서 이 성채를 만들었던 거죠.









기념품점들이 늘어서 있는 맞은편에 조망이 확 트인 공간이 있어

비로소 부다페스트 전경을 한 눈에 넣어 봅니다. 






파노라마 사진처럼 시원한 풍광이 펼쳐져 있고

부다왕궁, 세체니 다리, 국회의사당, 성 이슈트반 대성당...

부다페스트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곳!!

기대했던대로 정말 멋진 곳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나 봅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또다른 욕심 하나가 가슴 속 어딘가에서 슬금슬금 자라나고 있으니..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부다페스트 야경 중 가장 아름답다던데...'

하면서. 






# 부다지역의 부다왕궁과 마차시교회의 첨탑







# 부다왕궁과 도나우 강변, 그리고 세체니 다리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 그리고 마가렛 다리







이쯤에서 인증샷 남기기!!








#시타델라의 역사에 관한 안내판(?)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걸 보니 이제 다 왔나 봅니다.

주차장에서부터 이곳까지 딱 10분 걸렸네요.

엘리자베스 다리에서 걸어오르려면 20분~30분 걸린다던데...ㅎㅎ






드디어 가까이서 보게 된 겔레르트 언덕 꼭대기의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해방 기념비, 소련병사 위령비라고도 함)

이 여신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물리친 소련군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죠.



[자유의 여신상]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점령하여 전쟁의 요새 및 전범수용소로 사용함.

1944년 소련군 침공, 나치 독일은 이 요새에서 최후의 방어전을 펼치다 마침내 굴복함.

소련은 나치로 부터 헝가리를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47년 시타델러 꼭대기에 높이만 무려 40m에 달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세움.

(해방이 아닌 또 다른 점령일터인데...)

▶1956년 헝가리 혁명 때 소련의 잔인한 진압 이후 급속히 나빠진 소련에 대한 감정으로  '자유의 여신상'의 일부가 훼손되기도 함.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자유의 여신상' 철거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으나 아픈 역사도 역사로 인정하고 철거하지 않기로 함. 

▶현재 부다페스트의 상징 중 한 곳이 됨.







# 승리의 징표로 종려 나무를 치켜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








#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조형물들 







#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 겔레르트 언덕 정상에서 부다페스트 전경을 감상하는 여인







겔레르트 언덕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전경이예요.

엘리자베스 다리가 보이고, 주로 상업지역과 공장 지대로 형성된 페스트 지역이 눈 앞에 펼쳐져 있어요.

우뚝 솟아 있는 건축물은 96m의 높이를 지닌 국회의사당과 이슈트반 대성당뿐.

도나우 강변의 모든 건축물들은 이슈트반 대성당의 탑보다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돼 있기 때문이랍니다.







고작 235m인 겔레르트 언덕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걸 확실하게 확인시켜주는 풍광이네요.







# 페스트 지역의 랜드마크인 성 이슈트반 성당(Szent Istvan-Bazilika)








10년 전의 아쉬움을 해소하고

다음 행선지로의 이동을 위해 겔레르트 언덕을 내려갑니다.







올라올 때 지나쳤던 첫번째 전망대도 잊지 않고 들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를 이 풍광을 가슴과 눈에 다시 담고...







겔레르트 언덕을 마지막으로 부다지역과 작별합니다.

부다페스트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헝가리의 역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

부다페스트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겔레르트 언덕은 꼭 올라보시길 추천드리며

라니는 이제 페스트 지역으로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