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서유럽/┣ 이탈리아(完)

(피렌체) 단테의 자취를 찾아...

ⓡanee(라니) 2008. 4. 23. 20:21

2008년 1월 4일

 

 

 

 

*Ranee in Firenze

-단테 생가 & 단테가 결혼식을 올린 교회- 

 

 

 

 

단테 생가, 그리고 그가 결혼식을 치뤘던 교회로 향한다. 

 

 

 

 

 

단테가 결혼식을 올린 교회 

단테가 평생동안 문학적 스승으로 모셨다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보다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더 미쳤다는 그의 연인 베아트리체.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이라 불리는 단테지만 베아트리체를 그토록 열렬히 사모하지 않았더라면 불후의 명작 <신곡>은 탄생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단테는 9세 때 부친을 따라 간 귀족들의 파티에서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여덟살의 베아트리체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그로부터 9년 후, 그의 나이 18세 때 운명의 장난처럼 거리에서 우연히 성숙한 여인이 된 베아트리체를 만나 서로 눈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에겐 이미 열 두살 때 부친의 명으로 정혼한 젬마란 여인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그의 마음 속 유일한 사랑은 베아트리체 뿐이다. 그러나 가난한 시인인 단테는 귀족의 딸 베아트리체와 신분의 차이가 너무 커 결혼을 생각할 수는 없다. 결국 그녀는 먼발치에서만 바라봐야 하는 남의 아내가 되었는데, 그나마 그렇게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조차도 그녀가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으로써 그리 오래 허락되지는 않는다. 단테에게 있어 그녀의 죽음은 너무나 큰 고통이고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부친이 정해준 정혼자 젬마와 26살 되던 해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이후 자식이 네 명이나 생겨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의 마음엔 여전히 베아트리체만이 존재했다 한다.

불후의 명작을 탄생케한 한 여인을 향한 단테의 한결같은 사랑이 대단하긴하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는 남편과 살아야 했던 젬마란 여인의 운명을 생각하면 휴~

 

 

 

 

 

 

          단테의 생가

          단테는 이 곳에서 1265년 태어나 신곡을 저술했지만 노후에 황제와 교황에 맞서다 이탈리아 전역을 떠도는 신세가 되어 죽는 날까지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다.

 

 

 

 

 

 

  

베키오 궁전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을 향하여...

 

 

 

 

 

 

베키오 궁전이 보이는 걸 보니 시뇨리아 광장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