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북유럽, 러시아/┣ 노르웨이(完)

(노르웨이 베르겐) 그리그의 집 (트롤하우겐)을 찾아서...

ⓡanee(라니) 2009. 12. 27. 16:00

 

2009년 8월 4일 (화)

 

 

 

Ranee in Bergen

-그리그의 집- 

 

 

 

 

보스(Voss)를 출발한 우리는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Bergen)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그림 같은 풍경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들도 계속해서 반복되다보니 이젠 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도 살짝은 무뎌진 듯 하다.  

 

 

 

 

  

보스(Voss)를 출발한 버스가 1시간 20여분을 달려 멈추어 선 이 곳은 베르겐 시내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지역으로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가 여생을 보낸 집이 있는 곳이다.

그리그의 집을 보기 위해 우리는 가로수가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 

이 곳의 가로수는 백년전에 심어졌다는 너도밤나무로  큰 기둥을 가지고 곧게 자란다는 너도밤나무의 일반적인 특성과는 달리, 

휘어지듯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기도 하고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사람들이 그리그의 을 방문하는데 알맞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자라도록 손질을 한 결과라 한다.

길을 가던 중 나뭇가지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 신기한 듯 우리들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길래

손을 흔들어 주며 사진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거부감없이 바로 포즈를 취해준다. 귀여운 녀석들이다.  

 

 

 

Edvard  Grieg Museum  

그리그 박물관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는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덴마크의 카를 닐센과 더불어 북유럽 국민악파의 3인방으로 꼽히는,

노르웨이의 자랑스런 작곡가로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페르퀸트 조곡'이다.

'페르퀸트 조곡' 중 '솔베이지의 노래'는 울 엄마가 즐겨 들던 곡이라 어린시절부터 나에게도 익숙한 곡인데 

전축판이 빙글빙글 돌며 솔베이지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흥얼거리며 따라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 곳을 찾은 감회가 조금은 남다른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살아계셔서 같이 여행올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트롤하우겐이라 불리는 바닷가 근처 언덕 위에 자리한 그리그의 집 

그리그 박물관을 먼저 둘러본 후 빅토리아 양식의 그리그의 집으로 향했는데

이 집은 그리그가 성악가였던 그의 아내 니나 하게루프(그리그의 사촌)와 결혼 후 죽을 때까지 22년동안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그리그 생가 내부

그리그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집 내부엔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피아노와 가구, 그릇 등이 놓여 있었고 벽은 사진이 담긴 액자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가 죽은지 100년이 지났지만 그의 집 내부엔 그의 체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그의 집이 있는 이 곳은 트롤요정의 언덕이라는 뜻의 트롤하우겐이라 불리우는데

죽을 때까지 이렇게 멋진 자연과 함께한 그가 새삼 부럽단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그 작업실

트롤하우겐의 집에서 계단을 따라 50m정도 내려가면 그리그가 곡을 썼던 작업실인 작은 오두막이 나온다. 

그리그는 매우 예민한 성격이었는지 소음이 있으면 작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이 외딴 오두막에서 혼자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난방이 잘 되지 않아서 추운날이면 작업을 하다 감기에 걸려 앓곤 했다고 한다. 

이 곳엔 아직도 그가 사용하던 피아노와 책상, 노트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피아노 의자엔 베토벤 소나타 악보가 놓여 있다. (키가 작았던 그는 피아노에 앉을 땐 늘 의자에 무언가를 깔고 앉아야 했었다고 함)

 

 

 

그리그 콘서트홀

작업실에서 올려다 보면 보이는 이 곳은 그리그를 기리기 위해 지은 콘서트홀로 거의 매일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리그 콘서트홀과 그리그 조각상

콘서트 홀 옆에는 그리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의 실제 키와 같은 크기의 동상이라 하는데 

내 작은 키와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걸 보니 그리그는 상당히 아담한 키의 소유자였었나 보다.(나중에 알고 보니 154cm였다고 함) 

동상으로 보는 그리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싶었는데 헤어 스타일 때문인지 아인슈타인과 많이 흡사한 모습이다.

혹자는 마크 트웨인과도 닮았다고 한다고.    

 

 

 

그리그의 유해가 안치된 피오르 바위 묘지 

바다를 향해 언덕을 내려가다 보면 왼쪽 절벽 중간쯤에서 그리그와 그의 아내를 합장한 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장소는 살아생전 그가 선택한 장소로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와 낚시를 하다가

친구에게 이 절벽을 가리키며 영원히 평화롭게 휴식하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는 것. 

그리그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자연과 늘 함께 하고 싶었나 보다.

이 묘안엔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한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금은 화장을 하는게 흔한 일이지만 

그가 죽은 1907년 당시에는 화장을 하는게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녀석들은 언제 또 이 곳으로 옮겨왔을까?'

나뭇가지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다.

방학을 해도 하루를 학원을 도는 것으로 보내거나 기껏해야 아파트 단지 한 귀퉁이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대부분인

대다수의 우리나라 어린이들에 비해 이런 자연을 놀이터로 가진 이 아이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삶을 사는 것인지....

이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