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기저기/┣ 전남,광주

[보길도]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고산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서

ⓡanee(라니) 2016. 3. 11. 23:20


2월 초에 다녀온 보길도!!

한달이란 시간이 어느새 또 훌쩍 흘러버렸네요.

그때의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한달이란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보려합니다.




고산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

세연정에 이어 다음날 찾은 곳은 곡수당낙서재, 그리고 동천석실이랍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0여m쯤 올라가 만나게 되는 곡수당!!

곡수당은 격자봉에서 흘러내려온 계곡물이 한 굽이를 이루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곡수당(曲水堂)이란 이름도 물이 구부러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곡수당은 윤선도가 기거했던 낙서재 건너에 지어진, 윤선도의 아들 학관의 휴식 공간으로 사방에 퇴를 달고 반자를 둔 1칸짜리 집입니다.

학관은 윤선도의 첩인 경주 설씨의 소생으로 서자이긴 하지만 윤선도는 학관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여 죽을 때까지 같이 있었다고 하네요.

 

 

 


곡수당으로 가는 길엔 모양이 각기 다른 3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학관은 아버지인 윤선도에게 하루 3번 문안 인사를 드렸는데 문안 인사를 갈 때마다 다른 다리를 건너서 갔다고 하더군요.

무슨 이유에선진 알 수 없으나 학관이 효자였던 것은 분명한 듯 싶습니다.ㅎㅎ 


 


정방형으로 생긴 30여 평 규모의 하연지



 




곡수당 옆 상연지의 모습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을 이렇게 모아서 상연지로 흘려들어 가게 하는 것이죠.




 

사당입니다.

고산 윤선도가 낙서재에서 세상을 뜬 후 해남의 금쇄동 묘소로 이장하기 전까지 모셔두었던 곳이랍니다.

 

 


사당






낙서재 가는 길에 되돌아 본 곡수당



 


곡수당과 사당






윤선도가 기거했던 낙서재로 향합니다.




동와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들어와 167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집인 낙서재입니다.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수목이 울창해서 사람을 시켜 장대에 깃발을 달고 격자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그 높낮이와 향배를 헤아려 집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낙서재 위편에 있는 이 바위는 산속에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한 주자의 행적을 따른다는 뜻으로 윤선도가 소은병(중국 무이산 대운봉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란 이름을 붙여준 바위랍니다.




세연정이 윤선도의 놀이공간이었다면 낙서재 부근은 강학하고 독서하면서 즐거움을 얻고 은둔하고자 하는 선비의 공간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건너편 산에는 윤선도의 별장이랄 수도 있는  동천석실이 마주 보이는군요.



서재로 올라가 봅니다.





 

서재는 강학을 위한 건물로 건입 당시에는 학유공 정유악, 삼진사단, 학관(고산 5남) 등 여러 사람이 윤선도에게 학문을 배우던 곳이라 합니다.

 

 


학관의 아들 이관이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 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를 보관하던 전사청입니다.

 
 




윤선도가 달맞이 하던 장소로 기록되어 있는 귀암입니다. 

화강암을 쪼아 거북 형상을 만든 바위로 윤선도가 낙서재 터를 고르는데 중요한 지표였다 하는군요.


 

 

곡수당과 낙서재를 떠나...


 

 

윤선도가 독서하며 사색을 즐기던 장소였다는 동천석실을 보러 이동합니다.

 


 

 

낙서재에서 1km쯤 이동하여 동천석실을 오르는 입구에 섰습니다.

다시 봐도 참 신기하네요.

어찌 산 중턱에 저렇게 집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

 



 

산 중턱까지 오르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동백나무 숲은 어디나 분위기가 있어 걸을 맛이 납니다.

 


 

 

 짝꿍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목적한 곳에 다다른 우리들!!

어림잡아 10여분 정도 오른 것 같네요, 

 


 


건물 두 채 중 아래에 있는 건물이랍니다.

동천석실에서 약 20m 아래에 있는 정자형 침실이죠.

추운날에는 윤선도가 불을 떼고 잠시 쉬었던 곳으로 아궁이가 석축 아래 멀리 있는 특이한 온돌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합니다.



 

위쪽에 있는 동천석실 올라 봅니다.

 


 


절벽 위에 세운 한칸짜리 정자인 동천석실!!

윤선도가 부용동 제일의 명승이라 했을만큼 특히 좋아했던 곳이죠.  




라니가 보기에도 동천석실은 가히 보길도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 같더라구요.

특히 가을이 되어 황금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답니다. 





윤선도가 독서를 하던 공간인 동천석실!!

윤선도는 이곳에서 신선 같은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동천석실 앞에 있는 2개의 바위는 용두암(용두는 도르레의 방언)이라 합니다.

두 바위 사이의 홈에 도르레 같은 시설을 설치하여 통 속에 넣은 음식을 줄에 매달아 낙서재 지역으로부터 손쉽게 운반해 먹었다는군요.




줄의 일부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데...




줄의 용도를 달리 쓰고 있는 울 짝꿍!!

"너무 애쓰지 말아요."




↑↑

동천석실을 배경으로





윤선도가 차를 끓이던 바위라고 해서 차바위라 불리는 곳에 울 짝꿍이 앉아 있습니다.

차바위에는 차상 다리를 고정할 수 있도록 몇개의 구멍이 파여 있어요.

윤선도는 이곳에 올라 앉아 청별항, 격자봉, 곡수당, 낙서재 등을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다도를 즐겼던 거지요.

"짝꿍~ 시상이 좀 떠오르십니까?" 





아래 쪽으로는 석담이 보입니다.

암석을 파서 인공으로 만든 연못이죠.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칭하였습니다.




석담으로 내려가 봅니다.




↑↑

석담과 희황교




↑↑

동천석실을 떠나기 전 남겨본 기념샷





발이 좀 아파서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너무나 좋았던 동천석실!!

그 동천석실을 떠나며 윤선도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행도 마무리합니다. 

고산 윤선도 하면 보길도어부사시사 밖에 떠올리지 못했었는데 이번 보길도 여행을 통해 윤선도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여행도 물론 좋지만 라니는 이렇게 공부하는 여행을 좋아하기에 보길도 여행은 퍽 보람을 느끼는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