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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유명한 무량사 /부여 10경 중 3경인 무량사

ⓡanee(라니) 2017. 6. 30. 00:16

[2017-06-11]


성흥산 사랑나무 포스팅에 이어 두 번째로 쓰는 부여 여행기에요.

이번에 소개해 드릴 곳은 만수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천년고찰 무량사( )로 

부여 10경 하나이기도 하고, 

생육신() 중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 곳으로도 유명한 사찰이랍니다.

통일신라 문성왕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 초기에 대중창하여 대웅전, 극락전, 천불전, 응진전, 명부전 등의 불전과 30여동의 요사와 12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조선 인조 때 진묵선사에 의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보물 제356호인 극락전과 보물 제185호인 5층석탑, 그리고 보물 제233호인 석등과 같은 문화재가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구요. 

그럼 라니와 함께 천년고찰 무량사로 고!! 고!! 고!! 해 보실까요.=3=3=3 



<무량사 안내도>


☞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어요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뒤 무량사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무량사는 문화재 보호구역이란 이유로 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음)  





보통은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일주문이지만 이번엔 무량사 일주문의 편액을 한 번 들여다 볼게요.

편액에 쓰인  '만수산 무랑사(寺)' 라 적힌 글씨!! 

이 글씨는 전국 각지의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긴 서예가 차우(此愚) 김찬균이 쓴 것으로  

속초 신흥사 사천왕문, 통영 미륵산 관음암 보광루, 여주 봉미산 신륵사 심검당 등의

편액에 쓰인 글씨들도 그가 남긴 것이라 합니다. 

그의 글씨 옆에는 항상 주자서체(朱子書體)와 일체유심조(一切維心造)를 새긴 조그만 한반도 지형의 두인(頭印)있는데

그는 이 지도 두인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해요. 

전국 사찰을 돌며 많은 흔적을 남겼건만 그의 마지막 생은 홀연히 사라져서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하네요. 

앞으로는 사찰 여행을 할 때마다 편액에서 지도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기지 않을지...ㅎㅎ 





이제 일주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숲이 우거진 길을 걸어갑니다.







어느새 천왕문이 나타나고...







천왕문을 지나면 무량사 경내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백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더위에 지친 여행자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물해 주어 너무나 고맙네요.







천왕문을 나와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요사채가 있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범종각이 있습니다.

범종은 목어, 운판, 법고와 함께 4물이라 하는데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깊은 산사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어둠이 내려앉는 시각, 봉화 청량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들었던 

그 깊은 울림의 소리를 라니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 바라봅니다.

무량사의 보물석등5층석탑, 극락전이 일직선 상에 배치되어 있고

 왼쪽 위로는 우화궁이, 오른쪽으론 명부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과 비례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석등은 보물 제233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고려 초기석등이랍니다.

 1971년 해체 수리할 때 보살상이 새겨진 거울 모양의 둥근 청동 원판 2장이 나와 무량사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하네요.




<명부전, 보물 제185호인 5층석탑, 보물 제233호인 석등>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부여정림사지 5층석탑과 많이 닮았다는 무량사 5층석탑>






<19세기 사찰 건축 양식이 잘 보전되어 있는 명부전>








무량사의 중심 불전인 극락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2층 불전인 극락전은

외관상으로는 2층 구조이지만 내부는 아래 위층 구분 없이 하나로 틔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이러한 예는 오층목탑 형식인 법주사 팔상전이나  3층 전각인 금산사 미륵전,

그리고 화엄사 각황전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2층처럼 보이는 구조로 지은 것은 기능보다 위엄과 장엄에 그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 중기 불교 건축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위의 설명 안내판을 참고 하시구요. 



<주존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는 극락전 내부> 






<정연하면서도 아늑한 극락전 앞마당>


 






승방인 우화궁입니다.

부처님이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데서 따온 이름이라는데

참으로 어여쁜 이름이 아닌가 싶네요.





우화궁의 벽 기둥들에서 볼 수 있는 한자로 쓴 글귀들은 진묵선사가 쓴 시라는데

시 구절을 들여다 보면 진묵선사가 술을 상당히 좋아하지 않았나 싶답니다.

☞진묵대사의 시를 확인하고 싶은 신 분들은 사진을 클릭해서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시구요.





우화궁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물이 바짝 마른 개울가 건너편으로 예쁘고 정겹게 보이는 청한당이 있는데

출입금지 구역인지 진입로가 보이질 않아서...

 






결국 청한당은 못들어 가보고

삼성각 옆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답니다. 







이제 무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설잠(김시습) 스님 영각으로 가 볼까 합니다.







 바로 이곳이 설잠(김시습) 스님 영각으로

여느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고 무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전각이랍니다.

이곳에는 조선초기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한 매월당 김시습초상이 걸려 있는데

생육신 중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수양대군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비판하며

벼슬을 버리고 방랑생을 하다가, 방랑 끝에 말년을 무량사에서 보내고 

59세의 나이로 무량사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네요. 




<원통전>






<석가여래좌상과 좌우로 5백 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는 불전인 영산전>






<천왕문과 요사체>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들어올 때의 반대로

천왕문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어느새 일주문까지 왔습니다.  

나가면서 보니 일주문의 이름이 따로 있었네요.   

'광명문(光明門)'이라고.  

오른쪽 위에는 역시 지도가 보이구요.ㅎㅎ 

 

역사 탐방으로 찾아보아도 좋을 무량사!!  

부여에 가시거들랑 잊지말고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만수산 산행까지 함께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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