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서유럽/┣ 프랑스(完)

(파리) 루브르 박물관- 나폴레옹1세의 대관식 外

ⓡanee(라니) 2008. 3. 21. 23:01

2007년 12월 28일 (금)

 

 

 

*Ranee in Paris

- 루브르 박물관 -

 

 

[드농관 2층 대작 전시실(붉은 방)]

 

두 번째 찾은 루브르.

지난 여행 처음 루브르를 찾았을 때는, 아는 게 없어 보이지 않던 모든 것들이 신기할 정도로 눈에 쏙쏙 들어온다.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꼭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번엔 전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은 있으되 실질적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없는 여건이라 안타깝다.

또 한 번 루브르를 찾을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있길...  

 

 

 

다비드의 <나폴레옹1세의 대관식>

 

나폴레옹을 만난 후 열렬한 보나파르티스트가 된 다비드는 나폴레옹 황제를 찬미하는 대작을 몇 점 남겼는데

그 중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등극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의 장면은 나폴레옹  스스로 대관한 후 황후가 되는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 주는 광경으로

교황 비오 7세가 소심하게 그 대관을 축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많은 밑그림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이러한 구성으로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니나 나폴레옹의 권력이 타인으로부터 수여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구상으로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 속에서 그 웅장함과 대관식 순간의 삼엄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 아래 안내판에는 주요 인물의 이름과 얼굴이 상세하게 새겨져 있다.

 

 

 

 

 

  

 

 

" 원래 이 대관식날(1804년 12월 2일) 제관의 수여자는 교황 비오 7세였다.

한때 카톨릭 교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폴레옹이 교황청쪽과 화해하면서 대관식 주재 제의를 했을때,

비오 7세는 나폴레옹을 자신의 발 아래 무릎꿇게 함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드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제의를 수락했다.

그러나 막상 대관식날 교황이 관을 씌우려 하자 나폴레옹은

관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관중들에게로 돌아서서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웠다.

교황의 체면이 무참하게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조세핀의 머리위에 자신이 직접 황후의 관을 씌워주었다.

그림은 바로 이 두번째 장면을 잡은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다비드 역시 그 절정의 순간을 지고의 위엄으로 잡아내고 있다."

 
- 이주헌,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중에서
 
 
 
 
 

 

 

 

 이 작품 안에 있는대관식에 참석한 200여명의 인물들은  하나 하나가 개인 초상화를 방불케 할만큼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다.

 

 

월계관을 쓰고 있는 나폴레옹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나폴레옹은 일반적인 왕관대신 월계관을 쓰고 있다.

그것은 곧 나폴레옹이 그 자신을 로마의 황제와 동일시 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로마의 황제는 월계관을 썼다.

나폴레옹은 파리의 화려함 위에 로마의 장려함을 더하려 했다.

(히틀러도 그랬듯 유럽의 정복자들은 미학적으로 늘 로마로 되돌아가려 했다).

나폴레옹이 되살리려 한 로마의 영광을 미술 속에 실현하려 한 사람이 다비드 였으므로

두사람의 고전주의는 서로 매우 이가 잘 맞았다.

그러므로 다비드의 그림속에서 나폴레옹은 늘 한 사람의 카이사르(시이저로)로 강력한 이미지를 심고 있다.

 

- 이주헌,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중에서
 
 
 
 
 

  

 

 ▲

교황 비오 7세

 

습작에서 완성작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던 그림 속 비오 7세의 모습.

습작에서이 교황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나 완성작에서는 손을 들어 축하의 몸짓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프랑스가 전 유럽의 수장인 교황을 데려다가 나폴레옹 앞에 굴복할 것을 강요했던 것이나

나폴레옹은 작품을 통해 교황이 자신의 황제 등극을 인정하고 축복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리고자 

그림을 이렇게 수정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조세핀 

조세핀은 나폴레옹보다 6살이나 많고 아이들도 있는 이혼녀였다.

하지만 그림 속 조세핀은 젊고 아름답다.

나폴레옹이 다비드에게 그렇게 그려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나.

 

 

 

 

 

 

 

대관식에 참석한 다비드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주교들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결혼은 가족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는데

특히 나폴레옹의 어머니인 레티치아는 둘의 결혼을 제일 많이 반대했었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둘의 결혼식 이후 8년이나 지난 이 대관식날에 조차  레티치아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화가 다비드는 황제의 대관식에 황제의 모후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황제에게 두고두고 누가 될 것이라 생각해

그림속에 그녀를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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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9m  세로6m인 이 그림의 크기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면

그림 바로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그녀와 그림의 크기를 비교해 보자.

 

 


  

 

 

 

그로의 <자파의 페스트 격리소를 방문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는 이집트 원정 당시 자파의 요새를 점령했으나 곧 끔찍한 페스트에 휩쓸리고 말았다.

병자들을 위문하는 나폴레옹,

이 작품은 전염도 두려워 하지 않고 병사들을 위문한 나폴레옹의 용기와 인간애에 찬사를 보내고 있으나

실제로는 나폴레옹이 병 든 병사들을 안락사 시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소문을 잠 재우려는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대작  전시실에는 다비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의 출세작이 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도 걸려 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고대 로마의 전설을 그린 작품.

호라티우스 3형제는 영웅으로 칭송 받는 인물로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 출장하기 위해 3형제가 아버지에게서 검을 받는다.

금방이라도 전투에 뛰어들 듯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3형제의 표정이다.

 하지만 반대로 작품의 오른쪽에서는 3형제의 누이들이 비탄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분한 색조로 표현된 이들의 슬픔은  남성들의 영웅주의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전투에 대한 갈망과 혈육을 잃는 슬픔을 한 작품 안에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레카미에 부인은 파리 사교계에서 인기가 높은 여인으로

 고대 그리스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은 흰 드레스와 머리띠를 하고 있는데

이런 옷차림은 당시 최신 유행이었던 옷차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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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다비드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