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리스. 터키/┗ 터키(完結)

(터키 셀축) 에게 문명의 꽃, 에페소스(에페스) 유적지

ⓡanee(라니) 2008. 12. 13. 13:49

2008년 8월 9일 (토)

 

 

 

 

-에게 문명의 꽃, 에페스- 

 

 

 

 

 

   기원 전 1100년 경 그리스의 이오니온족인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로스가 토착민들을 추방시키고 건설한 도시 에페스. 

   지금은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 옛날의 화려함과 위엄을 거의 다 잃어버린 돌무더기 투성이의 황폐한 유적지가 되어 있지만

   리스와 로마시대를 거치며 에게해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 번영을 누렸었던 고대도시, 에게 명의 꽃,  에페스로의 여행

   을 시작해 보자.  

 

 

 

에페스유적지 남쪽출입구 

 

 

매표소에서 입장 티켓을 구입한 우리는 에페스 유적지의 남쪽 출입구로 들어서고 있다.이제 시작인데 딸 아이는 시작도 하기전부터 축 처진모습을 하고 유적지에 대한 관심을 도통 보이질 않는다.지난 밤의 야간 이동 때문에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겠지만 아테네나 델피를 여행할 때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걸 보면 딸 아이에겐 고대도시의 유적지가 무너진 건물, 혹은 돌무더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런지 모르겠다. 따가운 햇살을 피할 그늘 한 점 보이지 않으니 찌증이나 부리지 말아야 할텐데.....    

 

 

 

 

 

 

 

 

 

 

 1  바리우스의 목욕탕

 

 

남쪽 입구로 들어서서 조금 걷다보니 유적지 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3개의 아치가 있고 돌이 쌓인 이 곳

은  2세기에 지어진 바리우스 (Varius)의 욕장터인데 현재 그 일부만 발굴된 모습이라고 한다.

하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에페스 유적지가 전체의 10분의 1정도만 발굴된 모습이라고 하니 이 욕장처럼 일부만 발

된 유적도 많을 것이고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채 빛을 볼날만 기다리는 유적들은 더 많을 것이다.       

 

 

 

 

 

 

 2  오데온  

 

 

바리우스 욕장을 지나 오데온으로 올라가 보았다. 오데온(공연장)은 지붕이 있는 소극장으로 공연뿐 아니라 귀족들의 회

의도 열렸던 곳이라 한다. 14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원래는  목재 지붕이 있었지만 지금은 당연히 그 지붕은

볼 수 없다.

 

 

 

 3  국영 아고라 

 

 

오데온에 올라 내려다 보니 바실리카와 국영 아고라였던 터가 내려다 보인다. 나라에서 운영했다는 국영 아고라는 기원전

1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완성했다는 광장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었으며 중심부에는 이시스 신전터가 있

었다고 한다.

 

 

 

 

 

 

 4  바실리카

  

 

오데온과 국영 아고라 사이에는 기둥만 남아 있는 바실리카가 있는데 이 곳에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아내의 상이

발굴되었다고. 

 

 

 

 

 

 

 5  플리타네이온(Prytaneion)  

 

 

오데온을 지나 서쪽으로 가면 고관들의 회의와 리셉션 장소였던 당시의 시청(Prytaneion)이 나온다. 사방은 각각 6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중앙에는 불의 여신 헤스티나의 성화가 항상 불을 밝히고 있던 아궁이가 있었다고 한다. 

 

 

 

 

 

 

 

 

 

 

 

 

 

 

헤스티아 신전의 불을 유지하기 위해 세웠던

천막을 고정하기 위한 도구 

 

  

 

 

 

 

 

 6  폴리오의 샘(Polio Fountain,폴리오 파운틴, 물 저장고) 

 

 오데온에서 바라본 '폴리오의 샘'과 '플리타네이온' 

국영아고라 서쪽에 있는 크고 높은 아치 형태의 폴리오 파운틴(Polio Fountain)은 폴리오라고 하는 이름이 새겨져 있어

'폴리오의 샘'이라 불린단다.  2세기에 처음 지어져 3세기에 재건축된 물 저장고라고. 

 

 

 

 

 

 

 7  도미티안(도미티아누스) 신전 

 

  

도미티안 신전은 로마 제국의 폭군이던 도미티안(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바친 신전으로 1세기에 지은 것이란다.  토대

를 포함해서 7m가 넘는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숭배를 받았었지만  황제가 암살된 후에 신전은 파괴되었다.   

 

 

 

 

 

 

 8  메미우스의 비   

 

  

시청(Prytaneion)을 오른쪽에 끼고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면 로마의 독재자 술라가 기원전 1세기에 에페스를 점령하는 면을 묘사한 메미우스의 기념탑을 볼 수 있다.  

 

 

  

 

 

 

 9  헤라클레스의 문   

 

  

크레테스(크레티아) 거리 입구 양쪽에 세워져 있는 2단으로 된 대리석 석주는 헤라클레스의 문이라고 하는데 사자의 털

죽을 두른 헤라클레스의 동상이 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헤라클레스 문은 당시 귀족과 서민생활의 경계 지점으로  마차가 들어갈 수 없게끔 좁게 만들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10  트라야누스의 샘 (트리얀 분수)

 

 

기원 전 190년 로마가 아나톨리아에 진출함에 따라 에페스는 그리스 시대에서 로마 시대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리고 로마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가장 번성하여 로마의 5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 유적은 트리얀(트리

야누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로마에서도 머나먼 이 에페스에 지어진 분수대라고 한다. 

샘 중앙에는 실물 크기로 만들 어진 황제의 석상있었다고 하며 황제상의 발 끝에서 물이 흘렀다고 한다.  본래는 높이

12m의 크기였으나, 현재는 축소된 크기로 복원되었다고.   

 

 

 

 

 

 

 

 11  크레테스(크레티아)거리   

 

 

크레테스 거리는 헤라클레스의 문에서 셀수스 도서관까지 에페스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거리로 아래 광장과 윗 광장을 잇

는 중심적인 도로였으며 길 양쪽에는 상가가 이어져 있었고 마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 도로였다고 한다.

  

 

분수 앞쪽 비탈에는 부유층이 살던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 3층으로 지어진 것들이 많다. AD 1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건축된 이 집들의 바닥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12  하드리아누스 신전  

 

 

크레테스 거리에 있는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도미티안 신전 이후 두번째로 로마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입구 중앙에

코린트 양식의 돌기둥 4개가 서 있고  한 가운데 있는 2개의 상부는 아치형으로 이루어있는데 앞쪽의 아치의 중앙에는

행운의 여신 티케가 조각되어 있고  안쪽 아치에는 메두사가 새겨져 있다. 또한 신전 좌우의 벽에는 하드리아누스가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부조로 새겨놓았는데 에페스 시민들의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하지만 여기

있는 조각들은 모두 복제품이고 진품은 에페스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니케>조각 장식

 

<메두사> 조각 장식

  

 

 

 

 

  

스콜라스티카의 욕장 

 

피온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과 스콜라스티카의 욕장 

크레테스 거리 옆에는 1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전형적인 로마 목욕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건물이 있는데 L자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탈의실, 냉탕, 온탕, 열탕을 갖추고 있다.   

 

 

 

 

전형적인 로마 목욕탕의 특징은 붉은 벽돌을 쌓아 바닥 난방을 한 것으로 바닥을 데워 물을 따뜻하게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곳은 고대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장소라 할 수 있겠다. 

 

 

 

욕장 주인인 스콜라스티카의 석상 

 이 목욕탕의 주인은 <스콜라스티카>라는 여자였다고 한다.

 4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이 여인이 다시 3층짜리 건물로 지으면서 비잔틴 양식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스콜라스티카의 욕장에서 바라본 셀수스 도서관  

 

 

 

 

 

 

 

  13  공중 화장실  

 

 

목욕탕도 사교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지만 목욕탕 옆에는 좀 더 이색적인 사교의 장소가 있는데 벽을 따라 아무런 칸막이도 없이 늘어선 공중 화장실이 그것이다. 벽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화장실은 중요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다고.

이 화장실에서도 고대인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을 이 곳으로 흐르도록 수로를 연결해서 수세식 화장실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이 화장실도 겨울엔 사용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처럼 보인다. 추운 겨울에 돌로 된 차가운 변기에 앉는다는 건 상상만해도 오싹한 일. 그래서  귀족들은 그들의 하인들을 미리 앉혀 두어 변기를 따뜻하게 데운 후 사용했다고 한다. 

 

 

  

 

 

   

 14  창관(유곽, 창녀의 집) 

 

 

셀수스 도서관 앞 대리석 도로를 걷다보면 왼쪽 바닥에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싶으면 브로델 (창관,유곽)로 오라'

고 유혹하는 세계 최초의 광고를 볼 수 있는데 로마시대 ‘창녀의 집’을 알리던 그림이라고 한다.

창관을 안내하는 여성의 얼굴,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 방향을 표시하는 발자국 모양이 새겨져 있다.

창부는 고대에서부터 있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Brothel(유곽)은 공중 화장실과 함께 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의 부속 건물로 알려져 있다는데 글쎄? ) 

 

 

 

 

 

 

  

 

 15  셀수스(케르수스, 세리시우스) 도서관 

 

 

 

크레테스 거리 끝에는 에페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이 있다. 2세기 초, 로마시대에 아시

아 지역을 관할하던 로마 집정관 셀수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이 독서광이었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

고 한다.

 

 

 

셀수스 도서관 정면에는 4개의 여성상이 있는데 이 여성상은 지혜, 사색, 학문, 미덕을 상징한다고 한다.

발견된 여성상은 현재 비엔나 에페스 박물관에 있고 이 곳에 세워져 있는 것은 진품을 그대로 본 뜬 복제품이다.

 

 

 

 

이 곳은 12,000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던 지식의 창고로 책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서관의 벽은 이중으로

만들어져 있다. 

많은 부분이 훼손 되었지만 1970년 오스트리아 고고학 협회에서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하여 정면은 제 형태를 갖추었다.  

 

 

 

 

 

 

 

  

 16  마자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

 

 

마자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은 아고라(시장)로 들어가는 문으로 도서관의 바로 왼쪽에 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

스와 그의 아내 리비아, 딸 율리아, 사위 아그리파를 위해 만들어진 문이란다.  

 

 

 

상업 아고라  

 

 

마자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을 나서니 상업 아고라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시장에서는 각지에서 온 물건 뿐만 아니라

노예들도 거래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대에 가장 번성했던 도시 에페스는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도시였고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만큼 상업

지역 역시 발달했었다고.  

 

 

 

 

 

 

 17   마블(대리석) 거리  

 

 

대리석 거리는 셀수스 도서관과 극장을 이어주는 거리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는 거리이다.

   

 

 

 

 

 

 18   대극장 

 

 

‘대리석 길’의 끝에는 피온산을 따라 만들어진 에페스 대극장이 있다. 연극 공연이나 시의회를 열었던 장소로  에페스 시

민들에게 중요한 장소였단다.

대극장의 모양은 바닥을 바라보며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져 있으며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지어졌으나 로마시대에 각부

분이 확장되어 무대에서 극장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60m에  이르는,  약 2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에게해에서

가장 큰 극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계단의 좌석에 쓰였던 대리석들이 후에 다른 건물을 짓는 자재로 사용되는 바람에

형이 많이 훼손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금도 여름이면 이 곳에선 큰 공연들이 열린다고 한다.

 

 

 

에페스에는 은으로 아르테미스 여신 조각을 만드는 수공업자들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전파하

게 되자 그들은 생계에 타격을 받게 되었고 결국 데메테리우스라는 은세공업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도 바울과 제자를 공

격하는 사건을 벌이게 되는데 이 극장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19   항구(아르카디아)거리  

 

 

 

극장에서 내려다보면 바다를 향해 곧장 뻗은 길이 보인다.

지붕은 사라지고 원주형 기둥만 남은 길, 이 길이 바로 항구 거리(아르카디아 거리)이다.  

 

 

 

오래 전에는이 길의 끝에 항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토사가 밀려와 쌓이면서 항구는 더이상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

었고 항구가 사라지면서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에게해 최대의 상업도시로 번성을 누렸던 에페스도 종말을 고하게 되

었다.  

 

 

 

 

 

 

 

 

 

성모 마리아 교회

 

 

북쪽 출구쪽으로 걸어나가다 왼쪽으로 난 샛길로 들어서면 AD4세기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교회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AD 431년에 유명한 종교회의가 열렸는데 이 종교회의에서 예수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춘 존재이며 성모 마리아는 신

의 어머니임을 선언함으로써 마리아가 단지 육체로서만 예수의 어머니라고 주장한 네스토리우스파를 정죄했다고 한다.    

 

 

 

 

 

 

에페스유적지 북쪽출입구  

 

 

에페스 유적지를 차례로 돌아본 우리는

따가운 햇살에 지칠대로 지친 채

에페스 유적지의 또 하나의 출입구인 북쪽 출입구로 향한다. 

 

 

 

 

 

북쪽 출구로 나서자 울긋불긋 터키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념품 상점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같으면 좋아라 하며 다가가 구경이라도 했을텐데

난 지금 너무 지쳐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기념품 상점보다는 맞은편에 있는 생과일 쥬스 파는 곳에 더 관심이 갔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나는 침만 꼴깍 꼴깍 삼키며 또 한번의 인내심을 발휘한다.

이번 여행은 인내심을 수련하기 위한 떠나온 여행인 듯 하다.

 

 

 

 

 

점심을 같이 하기 위해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일행들을 기다리는 중.

유적지에선 좀처럼 그늘을 찾기가 힘들어 더 쉽게 지쳤었는데

유적지를 빠져 나와 나무그늘에 앉으니 살 것 같다.

잠이 솔솔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