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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소안도 여행 (깃대봉/미라리 해변/소안 항일운동 기념관)

ⓡanee(라니) 2016. 2. 17. 09:53


전날에 본 가학산 야경으로 인해 소안도 여행에 대한 기대가 한껏 더 커진 우리들!!

소안도 구석구석을 누벼주리라 마음 먹고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 보는데 갑자기 민박집 할아버지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온 짝꿍이 근사한데가 있다며 그곳부터 들르자 합니다.

할아버지 말씀이 아직 개발이 안된 곳이라서 섬사람들만 아는 곳인데 제주도까지 보이는 바다풍경이 끝내주는 곳이라 하셨다나요.

우리끼리는 찾을 수 없는 곳이라 하여 할아버지와 동행하여 당도한 곳!!

길 입구도 좁고 노면도 울퉁불퉁하여 도무지 승용차가 들어서서는 안될 곳 같은데 차가 다니는 길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그 말만 믿은 울 짝꿍... 

무리하여 좁은 산길로 차를 몰더니 결국은 뒷바퀴가 퍽~ 찢어져 버리고 말았네요.




명절 연휴라 문을 열지도 않았겠지만 찢어져 바람 빠진 바퀴로 카센터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략난감이었는데 마침 할아버지의 동네 친구분 사위가 카센터를 운영하신다기에 연락하여 임시 방편으로 바퀴를 땜질합니다.




"수리하는데 얼마나 걸려요?"

"바퀴를 가지고 가서 수리해와야 하니까 2시간 정도 걸릴 것 같은데요."

이미 김은 샜지만 2시간을 그냥 기다리고 있기도 아까워 우리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곳을 가보기로 하고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그곳으로 향합니다.     




길 옆에 핀 요런 앙증이 야생화가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계속 발걸음이 무거웠을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요녀석들 때문에 기분 전환이 좀 되네요.




담아준 김에 요런 녀석도 한 컷!!




바퀴를 찢어지게 한 원흉인 비좁고 수풀 우거진 산길을 통과하니 예상치도 못했던 탁 트인 벌판이 나타나고 앞쪽으로 얕으막한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퀴 자국이 있는 걸로 보아 차가 드나들긴 하는 모양인데 아마도 승용차가 아닌 작업 차량이 드나드는 모양입니다. 




약간의 오르막을 한동안 오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곳에서부턴 가시덤불까지 헤치며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접근한 우리들!!

그런데 제주도가 어디쯤에 보인다는 건지....휴~

이리보고 저리 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아마도 아주 맑은 날에만 보이는 제주도였던가 봅니다.




드문드문 몇개의 섬들이 보이긴 하는데 이름도 잘 모르겠고...




그나마도 뚝뚝 떨어져 있어 사진으로 담기엔 역부족이었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선사해주고 싶었던 건 망망대해의 시원함이었던 것 같은데 사진을 찍는 우리에겐 그것이 원하던 풍경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원했던 사진은 포기하고 할아버지께서 보여주고 싶어 하셨던 망망대해의 모습을 이렇게 담아봤답니다.

때마침 지나가는 배 한척이 없었다면...ㅋㅋㅋ  




바퀴를 수리하느라 오전 시간을 다 허비하고 정오가 지나서야 미라리 해변을 돌아 봅니다. 





보길도만큼 잘 알려진 섬이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겨울이어서인지 정말 우리말곤 사람 한 명 없는 한적한 해변의 모습이네요.




모래가 아닌 자갈이 펼쳐져 있는 미라리 해변!!!

미라리 해변의 이 돌은 맥반석이래요.

여름철이면 강한 태양열을 받아 생명의 바이오가 나오는 신비스러운 암석이라나요. 

그래서 이 위를 그냥 걷기만 해도 피로가 풀린다 합니다.

확인하고 싶으시면 올 여름 바캉스는 소안도 미라리 해수욕장으로...ㅎㅎ




해변만 걷기엔 좀 단조로워 저 언덕(?)을 올라봤음 좋겠다 했는데 사실인진 몰라도 올라가는 길이 없다합니다.

어쩌면 멧돼지가 많아서 못올라가게 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네요.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미라리 해변의 모습이 더 근사할 것 같은데... 




따스한 햇살과 하늘거리는 꽃들!!

겨울에는 역시 남쪽나라가 좋은 것 같아요.



천연기념물 제339호인 미라리 상록수림





단조로운 풍경이라 딱히 사진 찍을 것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울 짝꿍 한동안 저 자세로 동상이 되어있네요.

짝꿍이 향하고 있는 시선이 궁금해 따라가 보니...




아하~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군요.

마치 보호색을 띈 것처럼 해변의 돌 색깔하고 비슷해서 라니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하여간 울 짝꿍의 눈은 '6백만불의 사나이' 뺨친다니까요.ㅋㅋ




가볍게 미라리 해변 산책을 마치고 떠나는 길!!




다시 오지 못할 듯한 이곳의 동백아가씨와도 눈맞춤으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소안도 주민들의 항일운동 흔적을 찾아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왔습니다.




69명의 독립운동가, 20명의 독립 유공자를 배출한  항일독립운동의 3대 성지라는 소안도!!

함경도의 북청, 부산의 동래와 더불어 독립운동이 가장 강성했던 곳 중의 하나라죠.

일제 식민지 암흑기에 독립군 자금 모금과 노동자, 농민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사립 소안학교를 만들어 후학을 지도하고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소안도 사람들!!

1920년대에는 6천여명의 주민 중 800명 이상이 불령선인(不逞鮮人,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으로 낙인 찍혀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하고 마을사람이 감옥에 갇히면 감옥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 추운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었다 합니다.





일제의 경찰에 말을 하지 않는 '불언동맹'이나 일장기 걸지 않기, 일본 국경일 행사 거부 등으로 일제의 폭압에 맞섰으며 각종 행사 때는 일본 경찰의 입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해요. 그래서 일제는 결국 1927년 소안학교폐쇄해 버렸구요.



소안학교(왼쪽), 소안항일운동기념탑(가운데), 소안항일운동기념관(오른쪽) 





그럼 소안이란 작은 섬이 어떻게 민족운동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엄청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양반층 혹은 지주층이라 할만한 계층이 없어 주민들 간에 갈등의 소지가 적었고, 한말 토지회수 투쟁과정을 통해 주민들 간에 단합이 강화되었으며, 주민들의 성금으로 세운 사립소안학교를 통해 신교육이 이루어졌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항로에 자리해 근대 문명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해방 후 소안도의 항일운동 역사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해요.

친일파가 득세한 해방 조국에선 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이 숨죽여 살아야만 했었기 때문이죠.

1990년 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지면서 소안도 항일운동의 역사가 비로소 복권됐고... 



해방 60년이 넘은 2003년에야 항일운동 기념관이 들어섰다 합니다.




섬 전체에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일제에 항거했던 선열들의 항일 정신을 게승하고 추모하고자 함이겠지요.

이렇게 평화스러운 모습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희생하신 그분들께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